“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은 전체가 갈릴래아에서 얼마 동안 활동하시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루살렘 상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33주간 월화수요일 삼일은 예루살렘 길목인 예리코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얘기를 들었고 오늘은 아주 특별한 얘기를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십니다.
우시는 것은 복음 전체를 놓고 볼 때 아주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제가 알기로 두 번밖에 없습니다.
왜 우십니까?
예루살렘이 폭삭 망할 것이기 때문이고,
예루살렘이 왜 망하냐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터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와 정반대로 평화가 제일 없는 곳이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평화가 없는 것은 평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화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평화 의지는 없는 것입니까?
평화 이기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평화롭기 바라지만 같이 평화롭기를 바라지는 않기에
결과적으로 나만 평화롭기를 바라는 꼴이 됩니다.
평화공존이라는 좋은 말을 우리가 알고 있지만
나만 잘살려고 하고 내가 잘살기 위해 너를 눌러야 하고,
심지어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기에 은근히 남이 불행해지길 바랍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나는 버스 전용차선을 막힘없이 달리면서
다른 차들은 거북이걸음으로 가는 것이 미안하지 않고 오히려
은근히 기분이 좋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 이기주의인 것이지요.
나만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나
나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이나
이 ‘나만’이 행복이나 평화 문제에서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고,
우리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같이 평화롭고 행복해야
나도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가르치시는 주님이
평화의 임금이심을 예루살렘이 모르고 거부하다가 마침내는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그 평화를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예루살렘처럼
이 평화를 거부하고 평화 이기주의를 살고 있진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오늘과 내일 김장 김치 담그는 날이라
제가 새로운 강론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양해 바라고,
아직 신청하지 못한 분은 오늘 내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