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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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보호자께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로하시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파라클레토스’, 곧 보호자라 부르시는 이유는 명백해서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까닭에 슬픔에 젖은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령께서는] 죄지은 일로 슬퍼하거나 이 생의 일상적인 환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자 각 사람에게 용서와 거룩한 자비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근심 걱정을 덜어 주신다는 것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존자 베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9
버림의 열매는 지혜와 불타는 사랑이지 억압이 아니다
얘야, 일어나거라(루카 8,54).
지혜가 태초부터 뛰놀았고 지금도 뛰놀고 있는 신성의 충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버림과 그대로 둠의 극치다. 엑카르트가 근원, 곧 지혜를 탐색하기 위해 끌어댄 성서적 전거는 다음과 같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코헬 1,7),
그렇다면 엑카르트가 말하는 우리의 근원을 찾는 일은 성서적인 지혜를 모범으로 삼아 지혜를 찾는 것이리라.
우리의 근원은 창조주 안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주에게서 밖으로 흘러 나오되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가 그러하듯이, 우리도 태초에 창조주 안에 있었다.
“태초에"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아버지께서 태초의 순결, 곧 온통 순결로 가득 찬 태초에 머무르시면서 영원하고 은밀한 신비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낳으셨다는 말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나는 바로 이 영원하신 아버지의 은밀한 지식 속에 드러누워 잠든 채 아무 말 없이 있었습니다 4(396)


<금주간 성서 읽기> 마르 1-4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거룩한 성심에 대한 묵상, 요셉 맥도넬 신부
성심에 대한 묵상
첫 번째 시리즈
첫 금요일 신심
IV. 신성한 마음의 감정들
자기 성찰을 위한 포인트: 영적 진보의 징후들
영적인 것에서 발전하지 않는 것은 후퇴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발전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음 여덟 가지 영적 진보의 징후들을 고려하십시오:
1. 죄의 감소: 당신의 죄는 더 적고 덜 심각해졌습니까?
2. 유혹에 대한 승리: 당신은 기도하면서 끈기 있게 신속하게 저항합니까?
3. 악한 열정의 억제: 당신은 그것들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얻고 있습니까?
4. 나쁜 습관의 근절: 당신은 그것들에 대한 경향이 덜해졌습니까? 그것들을 극복하는 데 더 쉬워졌습니까? 영혼의 순결에 대한 더 큰 욕망이 있습니까?
5. 더 큰 완벽함으로 행하는 일상적인 행동들: 단순한 습관에서 벗어나, 더 순수한 의도로, 더 적은 결점으로, 더 큰 근면성으로 행해집니다.
6. 좋은 습관의 증가: 당신의 선행은 더 신속하고 쉽게, 자기애의 혐오감이 덜하고, 더 큰 기쁨과 더 큰 꾸준함으로 수행됩니까?
7. 세상의 것들에 대한 애정 감소: 당신의 기쁨과 위로는 더 영적이고 세상적인 것이 덜하며,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의존도가 덜합니까?
8. 묵상과 침묵에 대한 더 큰 사랑: 당신은 기도, 성체 방문, 영적 독서, 헌신과 자기 부정의 실천을 더 좋아합니까?
오 예수여! 신성한 당신의 마음에 대한 헌신을 통해 당신의 봉사에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