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복음의 끝부분에서 사도들은 이런 사명을 주님께 받습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증인의 사명을 주님께 받은 사도들이 불구자를 고쳐주며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을 증거 하는 얘기가 오늘 사도행전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매우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처음 나타나셨을 때만 해도
이렇게 증거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확신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랄까 상태를 보입니다.
두려움, 무서움, 의혹, 놀람, 기쁨 등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보이는데 특히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였다.”라는 표현이,
그들의 긴가민가하고 곧 반신반의하는 믿음 상태를 잘 표현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기쁘기는 한데 아직도 믿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믿음은 과정 곧 두려움과 무서움과 의혹과
놀람과 기쁨의 과정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확고해진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두려움과 의혹이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두려움과 의혹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는 겁니다.
우리 삶에서 아무 두려움이 없을 때 믿음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존재 곧 구원자를 찾게 하는데
처음에는 그 구원자가 인간이었다가 차츰 하느님으로 바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역설이지요.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두려움이 두려움으로부터 구해 줄 하느님을 찾게 한다는 것이.
이것을 보면 우리가 당신을 찾고 믿도록 하느님께서
두려움을 씨앗처럼 우리 안에 심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구원자로 믿으려고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이 과연 구원자신지,
그에 대한 의혹과 의심이 수없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의심 때문에 주님을 믿지 못하다가
두려움 때문에 다시 구원자를 찾고 믿으려 하고,
믿으려 하다가 다시 의심이 생겨 믿지 못하다가
두려움 때문에 다시 구원자를 찾고 믿는 과정이 반복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믿음이 확고해지는 과정이고,
그리고 이 과정의 정점에 성령강림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두려움과 의혹을 보인
사도들에게서 우리는 큰 위안도 받고 도전도 받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우리에게 아직도 두려움과 의혹이 있는데
사도들도 그랬다는 것이 현재의 나를 위해서는 위안이지만,
그러나 사도들은 이것들을 통과해 확신에 이르렀다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나에게는 도전인 것입니다.
아무튼 사도들로부터 위안과 도전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두려움과 의혹이 아직도 있더라도 너무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사도들처럼 믿음의 과정을 가라고 도전과 격려를 받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