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654 추천 수 0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보답을 바라며 하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사랑이 참 사랑이라면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면 참 사랑은 보답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고,

참 사랑이 보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보답이 되기 때문이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보답이 됩니다.

참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그 자체로 너무도 큰 만족이 되지요.

 

예를 들어서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여고생이 매일 꽃을 교탁에 갖다 놓아도

선생님은 그것이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모르고 그래서 보답해주지 않지만

여고생은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기에 계속해서 그것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좀 다르게 얘기할 수도 있지요.

사랑이 사랑의 보답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이 보답이기 때문이라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이 사랑의 보답이라는 말이나

하느님이 사랑의 보답이라는 말이나 같은 말이 되는 거지요.

 

하느님이 실로 친히 우리의 보답이 되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러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에게 해준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할 때 슬며시

사랑이시고 가난한 사람이신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그럴 때 우리는 인격적인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보답치 못해도 주님 친히 보답이 되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은 죽고 난 뒤에나 보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바로 보답을 바라기에

바로 보답해줄 수 있는 친구나 부유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실천하고

그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잖아요?

 

이런 미래의 약속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 주님은 왜 이런 식으로 보답에 대해 말씀하셨을까요?

 

우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이 강한 사람은 현재의 보답이 없어도 미래희망을 믿습니다.

심리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가리기 위해

심리학에서 간단하게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반드시 둘 다 먹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먼저 먹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둘 다 먹어야 한다면 맛없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이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약하고 어릴수록 당장의 좋은 것을 택합니다.

당뇨환자가 당이 떨어지면 쓰러지기에 당장 당을 섭취해야 하듯

당장의 만족이 없을 때 너무도 불행하고 비참한 사람은

나중의 만족은 생각할 여유가 없기에 당장의 만족을 취합니다.

 

두 번째는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고

영원한 보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장의 보답은 순간의 보상이기에 영원할 수가 없지요.

 

자주 말씀드리듯 영원이란 영원한 현재이니 종말론적이고 영원한 보상은

미래의 보답을 앞당겨 현재적으로 사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8Nov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가란  우리 각자가 지닌 자신의 나약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지만,  내 안에 그러한 나약함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인간...
    Date2017.11.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181
    Read More
  2. No Image 08Nov

    연중 31주 수요일-사랑의 미명하에 악인 사랑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얼핏 보면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복음은 자신과 부모자식과 형제자매를 미워하라고 하는 반면 독서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
    Date2017.11.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824
    Read More
  3. No Image 07Nov

    연중 31주 화요일-소명을 위한 은사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 지체가 됩니다.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심오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지체론입니다. 제가 적극 동감하고 아주 좋아하며 즐겨 인...
    Date2017.11.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921
    Read More
  4. No Image 06Nov

    연중 제 31주간 월요일 -하느님 섭리에 대한 고민-

    T.평화를 빕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 섭리에 내맡긴다 혹은 하느님께 의탁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 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우리가...
    Date2017.11.06 Category말씀나누기 By일어나는불꽃 Reply0 Views406
    Read More
  5. No Image 06Nov

    연중 31주 월요일-사랑은 그 자체로 보답이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보답을 바라며 하는 사랑...
    Date2017.11.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654
    Read More
  6. No Image 05Nov

    연중 제31주일

     얼마 전 어느 자매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 처음보는 아이들의 첫 마디는  인사도 이름을 묻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몇 살인지 묻는...
    Date2017.11.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24
    Read More
  7. No Image 05Nov

    연중 제 31 주일-지배자가 아니라 인도자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제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고, 사제와 같이 지도자들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자, 이제 사제들아,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그런데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말라...
    Date2017.11.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71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84 Next ›
/ 58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