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141 추천 수 2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우리의 전례는 어제까지 다윗에 대한 사무엘기의 얘기를 다 들려준 뒤

오늘 집회서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집회서를 통해 

다윗의 삶을 종합적으로 들려주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복음은 헤도데에 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왕을 비교하게 되는데 공통점은

둘 다 왕이라는 것 말고도 둘 다 죄를 덮으려고 했던 점입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덮으려고 살인죄를 지었고,

헤로데는 잘못을 들춰내는 요한을 죽였지요.

 

사실 죄를 덮으려는 것은 이 둘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공통적인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죄는 씻어버리거나 치워버려야지 덮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죄는 씻어서 버리든 치워서 버리든 버려야 하는 것인데

덮어버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남는 거지요.

 

그래서 다윗과 헤로데는 덮으려고 했던 것까지는 같지만

다윗의 끝은 회개이고 헤로데의 끝은 여전히 죄인 것이 차이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작의 다른 결말>의 이유,

그러니까 시작은 같은데 이렇게 결말이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느님 앞에 서 있고, 헤로데는 인간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나탄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 앞의 자신을 봤지만

헤로데는 요한을 예언자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말을 듣고 하느님 앞에 서려고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있었습니다.

오늘 연회에 온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려고 했던 헤로데였지요.

 

사람들 앞에서의 죄는 덮거나 숨기고 싶기 마련이고,

하느님 앞에서의 죄는 뉘우치고 씻어버리게 되지요.

겉뿐 아니라 오장육부까지 샅샅이 아시는 분에게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선 다윗은 죄를 뉘우치고 씻어주십사고

청원 기도를 할뿐 아니라 이제 씻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그러니까 청원의 기도는 죄를 지었어도 가능하고,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도 가능합니다.

죄를 용서해달라고 자비를 청하고 근심 걱정에서

건져주십사고 기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찬미의 기도는 죄와 근심 걱정이 있을 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죄가 나를 짓누르고 근심 걱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어버리고 근심 걱정을 치워버린 깨끗한 영혼의 입에서만

찬미의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재물이 없는 가난과 욕심이 없는 것도 가난이지만 실은

죄와 근심 걱정을 다 치워버리고 없는 것이 가난입니다.

순결과 가난은 이렇게 통하고 일치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지가지의 죄를 짓고 덮으려던 다윗이

그러나 하느님 앞에 섬으로써 그렇게 깨끗하고 가난하게 되고

그래서 찬미의 시를 짓고 노래를 할 수 있었던 다윗이 부러운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2.07 07:32:36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2.07 07:32:00
    19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랑에 젖어)
    http://www.ofmkorea.org/193928

    17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http://www.ofmkorea.org/98767

    16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생활기도와 성사적인 일)
    http://www.ofmkorea.org/86706

    15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람마다 다르신 같은 주님)
    http://www.ofmkorea.org/74633

    14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내가 바로 작은 헤로데)
    http://www.ofmkorea.org/60121

    13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혹시 내가 헤로데와 헤로디아처럼?)
    http://www.ofmkorea.org/50712

    12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http://www.ofmkorea.org/5544

    10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어처구니가 없어서는 아니 되지)
    http://www.ofmkorea.org/3607

    09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영원한 현재이신 예수 그리스도)
    http://www.ofmkorea.org/2080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8Jun

    연중 11주 수요일-회개가 필요한 선행

    “네가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저는 선행에 있어서 아직도 회개에서 멀리 있습니다. 이는 제가 아직도 악행을 저지...
    Date2025.06.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644
    Read More
  2. No Image 17Jun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Date2025.06.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36
    Read More
  3. No Image 17Jun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원수라는 단어 자체가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때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다음 구절을 ...
    Date2025.06.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92
    Read More
  4. No Image 17Jun

    연중 11주 화요일-사랑 받는 일에서도 뛰어난

    재승덕(才勝德)이란 말이 있습니다. 재주가 덕을 이기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런 말이 있는 것은 재주는 많은데 덕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재주만 가지고 책임을 맡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며, 그래서 본인도 공동체 구성원...
    Date2025.06.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582
    Read More
  5. No Image 16Jun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Date2025.06.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38
    Read More
  6. No Image 16Jun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성경 말고도 많은 법들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입은 피해만큼만 상대방에게 해를 끼친다는 뜻인데  싸움이 더 크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한 대 맞으면  한 때 때리지 않고 두 대 때...
    Date2025.06.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7
    Read More
  7. No Image 16Jun

    연중 11주 월요일-은총으로 바꿔 받아들이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Date2025.06.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598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457 Next ›
/ 145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