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풀려난 자, 풀어주는 자.

 

오늘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사슬에서 풀려나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복음은 풀어주는 소명을 받음에 대해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는 풀려난 존재이고 풀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유롭게 되고 자유롭게 하는 존재인 겁니다.

 

세상의 권력인 헤로데는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사슬로 묶어두려 하지만

교회의 사람인 베드로는 거기에서 풀려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풀려납니까?

베드로 사도가 풀려나려고 애를 쓴 결과로 풀려났습니까?

다시 말해서 스스로 풀려날 궁리를 하다가 자기 힘으로 벗어난 것입니까?

 

전혀 그렇기 않지요.

자기보다 먼저 헤로데에게 야고보가 죽임을 당한 것을 봤음에도

베드로는 죽이려는 헤로데의 음모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제일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야고보가 먼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 때문에

영적인 경쟁심, 순교의 경쟁심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였다면 모를까 이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이 세상의 어떤 사슬도 감옥도 속박이나 억압이 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마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감옥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풀려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정작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감옥이 아니라 죄와 죄책감이었을 겁니다.

 

명색이 첫 제자이고 주님께서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자기인데

그리고 자기는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 자기인데

누구보다 먼저 배반을 하였으니 얼마나 그 죄책감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사랑한다고 다시 사랑을 고백하자 당신 양들을 맡기셨을 때

베드로 사도는 죄책감에서 풀려났을 것이고,

성령께서 내려오셨을 때 죄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것입니다.

 

죄와 죄책감에서 풀려나고 벗어난 베드로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죄의 억압과 죽음으로부터 풀어주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죄의 억압과 죽음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이 비단

고백성사를 통한 죄의 용서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죄의 사람이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 곧 사랑의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고백성사가 이미 지은 죄, 곧 과거를 용서를 통해 풀어주는 것이라면

성령으로 거듭남은 새로운 존재로 미래를 새로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때 베드로 사도와 같았던 우리도 베드로 사도처럼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죄의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야 하고

성령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해줘야 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그를 용서하고,

그가 용서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가 나를 용서하며

그리고 더 이상 세상과 세상 인연에 매이지 않는 새 사람이 되도록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한 교회처럼 기도해줘야 할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5.06.29 22:34:32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풀려난 존재이고 풀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문득, 어디선가 읽은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따귀맞은 사람이 따귀 때린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는 것과 같은 말로,
    본대로 배운데로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일 것입니다.

    저 부터 다른이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겠습니다.
    제가 하느님으로 부터 그리고 가까운 사람으로 부터 받은 그 사랑의 체험으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다른이도 또 다른이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다짐하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8Aug

    연중 제 22 주일-낮추는 겸손이 아니라 맡기는 겸손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세상사 꼴불견 중의 최고의 꼴불견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고, 그것도 겉으로는 그럴 마음이 없는 것처럼 겉꾸밈 하는 경우입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말입...
    Date2016.08.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91
    Read More
  2. No Image 27Aug

    연중 21주 토요일-게으를 뿐인데 악하다니!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제 생각에 악하고 게으른 종은 틀림없이 억울할 것입니다. 자기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고, 적어도 혹 게...
    Date2016.08.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64
    Read More
  3. No Image 26Aug

    연중 21주 금요일-사랑에도 슬기가 필요하다.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계속해서 슬기로움에 대한 비유입니다. 어제는 슬기로운 종의 얘기였고 오늘은 슬기로운 처녀입니다.   그런데 ...
    Date2016.08.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735
    Read More
  4. No Image 25Aug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마지막 순간을 위해 깨어 있다는 것은  매 순간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매 순간 깨어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깨어 있으라고 이야기하면,  매 순간 긴장하고 잇으라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긴장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오기 ...
    Date2016.08.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687
    Read More
  5. No Image 25Aug

    연중 21주 목요일-종도 충실할 뿐 아니라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종의 명령어를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명심 하여라.” “준비하고 있어라.”   너...
    Date2016.08.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77
    Read More
  6. No Image 24Aug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가진 정보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정보를...
    Date2016.08.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51
    Read More
  7. No Image 24Aug

    성 바로톨로메오 사도 축일-나보다 먼저 나를 보시는 주님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제가 알기로 요한복음에서 “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세례자 요한이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Ecce, Agnus Dei)이 저기 가신다.”고 할...
    Date2016.08.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92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003 1004 1005 1006 1007 1008 1009 1010 1011 1012 ... 1519 Next ›
/ 151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