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며칠 전 또 듣기 싫은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재속 프란치스칸 엄마의 아들이 교구 신부가 되었는데
자기는 프란치스칸이면서 아들은 교구 사제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구 사제가 되게 한 것이 물론 잘못은 아니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 말을 듣기 싫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 말을 듣기 싫었던 것은 교구 사제가 되게 한 이유,
곧 작은 형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 이유 때문인데
작은 형제가 되면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하고 고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좋게 이해하면 자기는 고생해도 자식만은 그런 고생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나쁘게 이해하면 주님을 따르는 길을 십자가 길이라고 하여 반대하는 것이지요.
사실 교구 사제의 길이 더 십자가의 길인지
수도자의 길이 더 십자가의 길인지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것이지만
어쨌거나 수도자의 길이 더 힘든 길이기에 부모가 반대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여인이 성모 마리아를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라며 부러워하는데
저는 이 부러움이 세속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멋진 말씀 선포에다 인기까지 대단한 것 때문에 부러워하는 것인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 주님의 어머니가 된 것 때문에 부러워하는 것인지.
세속적인 면이 없지 않았는지 주님께서는 그렇게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당신 엄마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시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이것은 전에 이미 말씀하신 적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주님을 만나러 왔을 때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걸 실천하면 다 내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바이지요.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신데
내게도 오신 하느님 말씀을 마리아처럼 받아 모시면 어머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러운 주님의 어머니 되기가 어떻게 보면 이렇게 쉬운 것인데
우리는 오늘 아버지의 말씀을 마리아처럼 받아들일 것인지,
내 아들이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원할 것인지,
이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올해 프란치스코 파스카(선종) 800주년을 맞이하여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고 그것을 본 많은 분이 새삼스럽게 감탄하곤 하는데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칸으로서 프란치스코처럼 살아내야 할
실천적 과제 앞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