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종이에 쓰는 편지
하늘이 이토록 시리게 맑은 날에는
어디론가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구름 한 점 머물지 못하는 허공이
너무 넓고 깨끗한 백지 같아서,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웅크렸던 말들이 잉크처럼 번져 나온다.
바람은 서늘하게 옷깃을 여미게 하고
햇살은 투명하여 숨길 비밀조차 없는데,
유독 이런 날이면
가장 아득한 곳에 두고 온 이름 하나가
지워지지 않는 문장으로 떠오른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흔한 첫 인사가
푸른 하늘 길을 따라 길게 번져간다.
계절이 제 가장 찬란한 살을 비워
바람의 길을 열어두었듯,
나 역시 비워낸 고독의 자리에
당신을 향한 다정한 염려를 채워 넣는다.
하늘이 너무 시리게 높아
지나온 계절의 상처조차 투명해지는 날,
바람은 마른 잎사귀의 모서리를 스치며
유리알 같은 침묵을 떨어뜨린다.
서늘해진 공기 속에서도
내 가슴 한구석은 아직 식지 않아,
미처 다 비워내지 못한 미련들이
붉은 불씨처럼 조용히 파닥인다.
끝내 다 쥐지 못했던 삶의 무게가
외로운 그림자로 길게 늘어설 때,
문득 이 깊은 고독의 한가운데로
아주 맑고 서러운 은총이 내린다.
제 살을 깎아 찬란해진 가을 허공 너머,
아직 뜨거운 내 연약한 심장을
가만히,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이 머문다.
슬픔은 물기가 빠져 더는 얼룩지지 않고
가벼워진 바람 속에서 기도가 된다.
다 식지 않은 채로도
당신의 품에 닿을 수 있음을 알기에,
이 시린 계절의 한복판에 서서
눈물 대신 고요한 감사를
그리운 이들과 나누고 싶다.
주소를 적지 않아도
이 맑은 바람이 내 은밀한 기도를 실어
그리운 이의 창가에 가만히 부려놓을 것만 같아,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파랗게 벼려진 하늘 위에
따스한 안부 한 줄을 꾹꾹 눌러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