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34-11,1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처음 들으면 낯설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 칼은
미움이나 다툼을 부추기는 칼이 아닙니다.
진리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를
드러내고 가르는 칼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칼’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읽습니다.
말씀은 양날의 칼처럼
우리 안의 참과 거짓을 갈라내고,
낡은 나를 베어 새로운 나를 빚습니다.
그 칼이 들어올 때 잠시 아플 수 있지만,
그것은 살리기 위한 갈라냄입니다.
오리게네스에게 ‘평화가 아니라 칼’이라는 말씀은,
값싼 평온에 안주하지 말고
말씀의 진실 앞에 정직하게 서라는 부르심입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당신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라 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십니다.
그리고 역설을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고,
나 때문에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움켜쥐면 잃고, 내어놓으면 얻는 것 ―
이것이 아낌의 가장 깊은 신비입니다.
참으로 아끼는 길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위한 말씀이
뜻밖에도 ‘시원한 물 한 잔’으로 끝맺습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건넨 물 한 잔의 사랑조차
결코 그 상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여기서 위로를 봅니다.
거창한 일을 못 해도 괜찮습니다.
작은 사랑 하나도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낌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복음은 두 가지를 함께 말합니다.
나를 위해 움켜쥔 것은 잃고,
주님을 위해 내어놓은 것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
그러기에 가장 확실한 아낌은
작은 사랑이라도 아낌없이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한 잔의 물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말씀의 칼이 내 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하는가?
나는 무엇을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움켜쥐려다 도리어 잃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물 한 잔’의 작은 사랑을 아끼지 않는가?
주님,
말씀의 칼이 제 안의 거짓을 갈라내게 하소서.
당신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아 참으로 얻게 하시고,
가장 작은 이에게 ‘물 한 잔’의 사랑을 아끼지 않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