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투명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이 글은 침묵과 기다림 안에서 발견한 복음의 핵심을 깊이 있게 담으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느님께서는 유능한 사람보다 투명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진리가 놓여 있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바로 내적 가난의 신비입니다. 내적 가난은 자신을 비우고 무능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남보다 더 옳고 더 높고 더 거룩해 보이고 싶은 마음, 결과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침묵은 바로 그 비움의 자리입니다. 침묵 안에서 우리는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내가 붙들고 있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동체는 내가 통제해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기 전에도 이미 일하고 계셨고, 내가 떠난 뒤에도 계속 일하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수동적인 포기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가장 깊은 신뢰가 됩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도구로 삼으십니다.
깨지지 않은 항아리가 아니라 금이 간 항아리를 통하여 빛이 새어 나오듯이, 상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을 통하여 자비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라 투명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바로 그 투명함의 절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승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희생양의 구조를 당신 몸으로 받아내심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고,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희생시켜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희생양이 되심으로써 선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께 바치는 마지막 희생 제사가 아니라, 희생 제사의 종말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죽음으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종교"를 끝내시고 "자비 위에 세워지는 하느님 나라"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 호세아의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자비는 상대를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죄를 묻기 전에 상처를 보는 눈입니다. 자비는 누가 더 옳은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침묵과 기다림은 결국 우리를 이 자비로 이끌어 갑니다. 침묵 안에서는 비교가 사라집니다. 기다림 안에서는 경쟁이 사라집니다. 자비 안에서는 우열이 사라집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완성된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비추는 창문들이며, 완전한 빛이 아니라 빛을 통과시키는 작은 등불들이며, 하느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담고 있는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명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욕심과 두려움과 비교심이 조금씩 사라질수록,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침묵은 바로 그 자비가 자라나는 공간입니다. 그 침묵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는 쓸모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거룩한 사람도 죄인도, 모두가 하느님의 빛이 통과하는 서로 다른 창문이며,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고 지나가는 거처이며,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가 세상에 드러나는 살아 있는 성사라는 것을. 그래서 기다림 끝에 남는 가장 깊은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주님, 제가 당신 빛을 가리지 않는 투명한 창문이 되게 하소서. 제가 무엇을 소유하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당신 자비가 제 안을 지나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하소서. 제가 높아지게 하소서가 아니라, 당신 사랑이 드러나도록 작아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삶 전체가 당신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의 통로요 도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