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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서 관계로, 이용에서 응답으로 건너가는 길

 

수단과 목적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수단이 목적이 되는 전도(顚倒) 우상숭배는 단순히 조각상 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부, 건강, 명예, 권력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일 뿐인데, 이것들이 '목적'의 자리에 앉는 순간 그것이 바로 현대판 황금송아지가 됩니다. 그것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는 순간,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지요.

 

소유와 소속의 차이 "생명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명에 속한 것이다." 이 문장이 참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내가 소유한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대한 생명의 신비 안에 초대받은 존재일 뿐이죠. 내가 주인이라는 오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겸손하게 삶을 마주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용'하는 신앙 vs '응답'하는 신앙

하느님을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사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그분을 조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사라는 통로를 통해 매일 우리에게 건네시는 그분의 손길에 응답하는 과정이겠지요.

 

뒤바뀐 자리에서 시작되는 침묵의 균열,

우리는 조용히 무너집니다. 소리가 크지 않기에 더 위험한 방식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삶의 중심이 조금씩 옮겨갑니다. 처음에는 단지 필요였던 것들, 조금 더 잘 살기 위한 수단들이 어느새 우리의 심장을 차지하고 앉아 이름 모를 절을 받기 시작합니다. 부는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건강은 불안의 방패로, 명예는 존재의 증명으로, 권력은 두려움의 해독제로 우리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잡아 두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우리를 사용합니다.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황금송아지가 세워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완벽하게 숭배되는 우상,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욕망으로 빚어진 신. 그리고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것이 나를 안전하게 해주는가?”만을 묻습니다. 그 질문 하나로 우리의 방향은 이미 결정됩니다.

 

내 것이라는 착각이 부르는 고요한 오만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내 삶”, “내 시간”, “내 생명”. 그러나 그 말들 사이에는 아주 미묘하고도 깊은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를 잠시 품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지나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세상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품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소유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소유될 수 없습니다. 생명은 언제나 우리를 초대하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흐름 속에 놓인 존재입니다. 강물 위에 떠 있는 잎사귀처럼, 우리는 방향을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흐름을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아니라, 자리를 바로 아는 지혜입니다. “나는 주인이 아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모든 영적 자유의 시작입니다.

 

신앙의 두 얼굴 : 이용하려는 손과 응답하는 마음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사실은 다른 것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자리합니다. “이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저것을 막아 주십시오.” “이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그 말들 뒤에 숨겨진 진짜 고백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제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 순간 신앙은 관계가 아니라 도구가 됩니다. 하느님은 더 이상 나를 부르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호출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그 반대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여지는 것. 하느님의 뜻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열리는 것. 그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응답하는 것. 신앙은 어떤 결과를 얻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다가와 있는 손길을 알아보고 붙드는 감각입니다. 그 손길은 말씀 속에서, 성사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일상의 작은 만남들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

삶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은 거창한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단지 뒤바뀐 것을 다시 돌려놓는 일, 그것에서 시작됩니다. 수단을 수단의 자리로, 목적을 목적의 자리로. 소유를 내려놓고 소속을 받아들이는 자리로. 이용하려는 손을 거두고 응답하는 마음으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무언가를 더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붙잡히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흐름 안에 머무는 삶

삶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소유되는 분이 아니라 흐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을 막아서는 존재가 아니라 그 흐름이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가장 깊은 행위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는 것입니다. 붙잡지 않고, 조종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고, 다만 열어 두는 것.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우상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보이지 않는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삶의 전부라는 것을. 우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참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창조된 모든 생명이 저마다 자기 몫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존중해주는 일, 그 일은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우상숭배의 현장에서 우상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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