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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적 존재로서 바치는 주님의 기도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7) 기도는 하느님을 설득하거나 그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필요를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사랑 고백의 대상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일과 그분의 나라와 뜻이 먼저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앞부분(9-10)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뜻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하지만 참된 기도는 하늘의 뜻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권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과 용서의 신비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1-12) 예수님은 평생 쌓아둘 재물이 아니라 오늘필요한 양식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매일매일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더불어 가장 강력한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을 용서해야 마음에 하느님의 자비가 담길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8) 이미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사랑받고 있음에 눈을 뜨게되면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움직이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요구하는 행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께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알고 사랑하고 계심을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도 평안을 느끼듯이, 기도는 말보다 먼저 신뢰입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말은 줄어들고, 설명은 짧아지며, 침묵은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많이 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머물러 줌으로써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는 흔히 하느님 나라를 죽은 뒤에 가는 장소로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관계의 질서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통치하던 내 왕국이 내려오고, 하느님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관계가 시작될 때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습니다.

 

내가 이기려 하지 않고 상대를 살리려 할 때, 내 주장보다 공동선을 먼저 생각할 때,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귀 기울일 때,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은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으로 말하면 이것은 내적 가난의 길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판단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확신마저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뜻이 머물 공간이 생깁니다.

 

일용할 양식은 관계 안에서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내일의 양식이 아니라 "오늘"의 양식을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오늘 주어진 은총을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양식은 빵일 수도 있지만, 따뜻한 위로 한마디일 수도 있고, 용기를 주는 미소일 수도 있으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대부분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양식을 주십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기도 가운데 가장 어려운 구절은 아마도 용서일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그 잘못에 대한 보복의 권리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는 것입니다. 상대를 놓아주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묶여 있던 나 자신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긴 여정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견디고 기다려 주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내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께 용서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체험에서 흘러나옵니다.

 

주님의 기도는 삶의 방향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외워야 할 기도문이기 전에 살아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형제를 경쟁자가 아니라 선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왕국을 내려놓게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사람은 오늘에 충실하게 됩니다.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결국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복음의 요약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바친다는 것은 단어를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갈 용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 한마디 안에는 이미 믿음이 있고, 가난이 있으며, 용서가 있고, 형제애가 있으며, 하느님 나라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도구적 존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기도는 무엇을 달라고 청하는 기도이기 전에 나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내어드리는 봉헌의 기도가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첫마디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자신의 계획보다 아버지의 뜻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나를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이 기도는 "주님, 저를 아버지 이름을 드러내는 도구로 써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침묵과 기다림, 나의 용서와 자비를 통해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하심을 보게 하소서

 

성 프란치스코가 말한 것처럼,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것이 곧 아버지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삶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는 내가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주님, 제가 아버지 나라가 오게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제가 있는 곳에 화해가 오게 하시고, 제가 머무는 곳에 형제애가 피어나게 하시며, 제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 희망이 살아나게 하소서." 라는 봉헌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 구절은 주님의 기도 전체의 중심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가르치십니다. "하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래서 이 기도는 "주님, 제 삶을 당신 뜻이 머무는 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응답에 이르게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성모님은 하느님의 계획을 모두 이해한 뒤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알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을 도구로 내어드렸습니다. 자신의 몸과 시간, 자신의 미래와 안전, 자신의 이해와 계산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님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구적 존재로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바뀝니다. 아버지, 저를 아버지 이름이 빛나게 하는 도구로 써 주십시오. 저를 아버지 나라가 오게하는 도구로 써 주십시오. 저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는 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오늘도 저를 통해 누군가가 위로받고, 누군가가 용서받고 누군가가 사랑받게 하소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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