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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두 번째 이야기

 

형제라는 이름은 짧지만 그 안에는 복음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형제는 내가 선택하여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곁에 보내신 사람입니다. 형제는 나의 뜻을 이루어 줄 도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거룩한 신비입니다. 형제는 나와 생각이 같기 때문에 형제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나와 함께 같은 생명의 근원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형제입니다.

 

포르치운쿨라는 바로 이 진실이 삶이 된 자리였습니다. 작은 성당 안에 모인 사람들은 출신도 달랐고, 성격도 달랐으며, 능력과 생각과 삶의 배경도 서로 달랐습니다. 어떤 이는 귀족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가난한 노동자였으며, 어떤 이는 배움이 있었고 어떤 이는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복음 앞에서 그들은 모두 같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작은 형제. 그 이름 안에서는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많이 아는 이가 적게 아는 이를 지배하지 않았고, 일을 잘하는 이가 약한 이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오래 머문 이가 새로 온 이를 자신의 아래에 두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다른 이 위에 군림할 수 없었고, 누구도 형제를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일 권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이었고, 서로의 도움 없이는 복음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형제성은 이렇게 자신의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는 혼자 완전할 수 없고, 혼자 구원받을 수 없으며, 혼자 복음을 살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형제가 지니고 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형제가 바라보며, 내가 쓰러질 때 형제가 나를 붙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사람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혼자서도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자랑하지만, 포르치운쿨라는 자신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난을 가르칩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관계를 믿는 용기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형제에게 들어올 문을 열어 주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형제성은 아름다운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까이 살아갈수록 서로의 결점이 드러나고, 함께 일할수록 생각의 차이가 나타나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감추어 두었던 상처와 욕망이 관계 위로 떠오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이상적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매일 만나는 형제는 우리의 인내와 겸손과 가난을 실제로 시험합니다.

 

형제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가볍게 여길 때, 나보다 늦고 서툴며 반복해서 같은 실수를 할 때, 형제성은 비로소 관념이 아니라 십자가가 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형제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내 뜻에 맞는 형제만을 사랑하는가.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 하는가. 나는 그의 성장을 기다리는가, 아니면 내 불편함을 빨리 없애기 위하여 그를 통제하려 하는가.

 

형제성은 다른 이를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형제를 통하여 내가 변화되는 은총입니다. 형제의 느림은 내 안의 조급함을 드러내고, 형제의 고집은 내 안의 숨은 완고함을 비추며, 형제의 약함은 내가 얼마나 능력과 효율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형제의 성공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내 안의 시기와 경쟁심을 드러내고, 형제가 인정받을 때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내가 하느님의 나라보다 나의 왕국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는 나의 거룩함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진실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형제와의 관계 안에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덜 겸손하고, 덜 인내하며, 덜 자유롭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조건을 붙여 사랑했고,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인정받기를 기대했으며, 공동선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나의 방식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형제는 내 안의 감추어진 왕국을 드러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편안하고, 내가 결정해야 안심하며, 내 방식대로 일이 이루어져야 옳다고 느끼고, 내 수고가 인정받지 못하면 섭섭해하며, 다른 이가 나보다 빛날 때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는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겉으로는 봉사와 책임과 열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통제와 소유와 자기 증명의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자신의 계획에 맞추려 하고, 걱정한다는 이유로 그의 자유를 제한하며,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약한 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걱정이 지나치면 통제가 되고, 책임이 가난을 잃으면 지배가 되며, 열정이 사랑을 잃으면 자기 의지가 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자비를 잃으면 폭력이 되고,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사람보다 제도를 앞세우면 배제가 됩니다. 포르치운쿨라의 형제성은 이러한 우리의 왕국을 내려놓으라고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나의 왕국은 한 마음 안에서 함께 중심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중 충실성은 함정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내가 빛나는 것보다 형제가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고, 나의 뜻이 관철되는 것보다 관계 안에 선이 흐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왕국에서는 형제가 나를 위하여 존재하지만,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내가 형제를 위하여 작은 도구가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의 보물이 될 때 포장과 증명과 자랑과 비교와 경쟁은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다른 이보다 나아 보여야 한다는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의 공로를 기억해 달라는 요구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내가 앞에 서지 않아도 공동체가 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고, 내가 시작한 일을 다른 형제가 완성해도 감사하며, 나보다 젊고 능력 있는 형제가 더 큰 역할을 맡을 때에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선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말한 참되고 완전한 기쁨의 한 모습입니다. 내가 인정받는 기쁨이 아니라 형제가 빛나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 내가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기쁨이 아니라 말째 자리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는 자유, 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충분해하는 가난입니다.

 

형제성은 다른 이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른 이 안에 있는 선을 보고 기뻐하며, 그 선이 공동체 안에서 자라도록 자신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이 다양한 사람 안에서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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