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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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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의 들보를 빼내려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덮어두었던 '내 눈 속 들보'의 구체적 진실은,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위선과 아집의 총합입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거대한 악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이중잣대

들보의 가장 구체적인 실체는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이중 기준입니다.내가 바쁘고 힘들어서 낸 짜증은 인간적인 실수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합리화합니다. 반면, 타인이 보여준 거친 감정이나 실수는 인간성 자체가 덜된 것이라며 본질적인 결함으로 낙인찍습니다. 나의 허물은 사정(事情)으로 덮고, 남의 허물은 성품(性品)으로 심판하는 왜곡된 시선이 바로 들보의 진실입니다.

 

옳음에 대한 중독 (아집)

내가 살아온 경험,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독선입니다. 내 생각과 다른 타인의 의견을 틀린 것이자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내가 다 겪어봐서 아는데",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는 말 뒤에 숨어, 상대방의 맥락과 삶의 무게를 지워버리는 영적·정신적 오만함이 내 눈을 가린 가장 두꺼운 나무둥치입니다.

 

타인이 준 상처는 기억하고, 내가 준 상처는 망각하는 것

우리는 타인이 나에게 준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무례함은 마음의 일기장에 깊이 새겨두고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비수 같은 말, 나의 방관으로 인해 누군가 흘렸을 눈물에는 철저히 맹인이 됩니다. 내가 피해자일 때의 기억은 선명하고, 가해자일 때의 기억은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기억의 비대칭성, 이것이 들보가 숨어 있는 방식입니다.

 

내면의 결핍을 감추기 위한 투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타인에게서 가장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티끌', 사실 내 안 깊은 곳에 숨겨둔 들보(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나의 약점이나 콤플렉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안의 이기심이 부끄럽기 때문에 타인의 이기적인 행동에 격분하고, 내 안의 불안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부족함을 먼저 찾아내어 목소리를 높입니다. 타인을 향한 격렬한 비난은, 사실 내 안의 들보를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입니다. 결국 들보의 진실은외부를 향한 시선은 100배 줌렌즈처럼 확대하면서, 나를 향한 시선은 아예 꺼두는 시선의 불균형에 있습니다. 이 무거운 나무둥치를 꺼낸다는 것은, 내가 결코 '무결한 피해자''언제나 옳은 관찰자'가 아님을 인정하는 부끄러운 고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안의 추함과 가식, 옹졸함을 온전히 직시할 때 비로소 들보는 눈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악습을 몰아내는 덕과 예수님의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1-5)는 사실 같은 영적 진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들보를 보라고 하시고, 프란치스코는 그 들보를 빼낼 수 있는 덕을 말합니다. , 들보는 제거해야 할 악습이고, 덕은 그 자리를 채우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들보는 악습의 집합체입니다. 내 눈의 들보는 단순히 죄 하나가 아닙니다. 교만, 독선, 자기중심성, 비교의식, 판단, 두려움, 탐욕, 불안, 상처받은 자아가 얽혀 있는 거대한 나무둥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의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들보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언제나 밖을 봅니다. 누가 틀렸는지, 누가 부족한지,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지에 시선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들보를 빼내는 사람은 시선이 밖에서 안으로 옮겨집니다. 사랑과 지혜는 판단의 들보를 빼냅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평가하게 됩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착각합니다. 들보를 가진 사람은 형제의 행동만 보지만, 사랑과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행동 뒤에 있는 아픔과 두려움과 상처까지 봅니다. 그래서 사랑은 판단을 자비로 바꾸고, 지혜는 단죄를 이해로 바꿉니다.

 

인내와 겸손은 옳음의 들보를 빼냅니다,

들보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내가 옳다"는 확신입니다. 내 경험, 내 가치관, 내 신념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들보는 자라기 시작합니다. 겸손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인내는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허락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심판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됩니다.

 

기쁨과 가난은 탐욕의 들보를 빼냅니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우위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남의 티끌을 찾아내며 은근히 자신을 높입니다. 그러나 내적 가난은 자신을 증명하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충분한 사람은 비교할 이유도 경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기쁨은 우월감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선물임을 아는 데서 옵니다.

 

고요와 묵상은 불안의 들보를 빼냅니다

들보를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바쁩니다. 남을 판단하느라, 자신을 방어하느라, 인정받으려 애쓰느라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묵상은 시선을 타인에게서 하느님께로 돌려놓습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남을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치유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자비와 신중함은 심판의 들보를 빼냅니다

자비 없는 사람은 사람보다 잘못을 먼저 봅니다. 신중함 없는 사람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판하지 말라는 말은 분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비는 사람을 품게 하고, 신중함은 섣부른 판단을 멈추게 합니다. 결국 들보를 빼내는 길은 덕을 살아내는 길입니다

 

들보를 빼내려 애쓴다고 들보가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만을 억누르려 하기보다 겸손을 배우고, 탐욕을 없애려 하기보다 가난을 살아가고, 분노를 참으려 하기보다 인내를 익히고, 판단을 멈추려 하기보다 자비를 실천할 때, 들보는 어느새 힘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한 덕은 악습과 싸우는 무기가 아니라 악습이 머물 수 없게 만드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들보를 빼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들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키우고, 겸손을 배우고, 가난을 선택하고, 묵상 안에 머물고, 관계 안에 선이 흐르도록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형제의 티끌을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같은 은총으로 살아가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곧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작은 형제가 됩니다.

 

들보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비난이 아니라 연민이, 심판이 아니라 형제성이, 내 왕국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들보 비유와 성 프란치스코의 악습을 몰아내는 덕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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