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의 사랑과 우리 일상의 영적 가치 (요한 10,11-18)
착한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한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기준입니다. 착한 목자는 교회 안의 상징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인간관계 안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복음의 모습입니다.
착한 목자는 생명을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양을 이용합니다. 착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을 내어줍니다.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도 사람은 두 방식으로 타인을 대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내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대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한 사람의 존엄한 생명으로 존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배우자를 편리함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대할 때 사랑은 깊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기대를 이루는 작품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바라볼 때 관계는 건강해집니다. 직장에서도 사람을 성과의 수단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인격체로 볼 때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착한 목자의 영성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살리는 태도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 깊이 알아주는 사랑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정보가 아닙니다. 상대의 이름, 습관, 약점, 상처, 침묵의 뜻까지 알아차리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가장 큰 위로를 받을 때는 충고를 많이 들을 때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일상에서 착한 목자의 사랑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말하지 않아도 지친 마음을 알아차려 주는 사람, 실수 뒤에 숨은 두려움을 읽어주는 사람, 겉모습보다 내면의 선함을 믿어주는 사람, 넘어졌을 때 판단보다 손을 내미는 사람, 세상에는정보는 많지만 이해는 부족합니다. 연결은 많지만 친교는 적습니다. 예수님의 목자됨은 깊이 알아주는 사랑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마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가까운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 소외된 사람, 상처받아 멀어진 사람에게까지 향합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우리 밖의 양들’은 누구입니까? 외롭게 지내는 노인, 실패로 위축된 사람,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 가족 안에서도 홀로 우는 사람, 신앙을 떠났다고 느끼는 이들,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기는 사람, 착한 목자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찾아 나섭니다. 기다립니다. 부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고, 먼저 미안하다 말하고, 먼저 손 내밀 때 목자의 일이 계속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사도 11,18) 복음이 특정 민족, 특정 문화, 특정 경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선언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회개는 단순히 죄책감에 머무는 후회가 아닙니다. 회개는 생각의 방향 전환, 삶의 중심 이동, 존재의 새로움을 뜻합니다. 즉 이 말씀은 이렇게 들립니다. 닫혀 있던 사람이 열리는 길, 자기중심에서 사랑 중심으로 옮겨가는 길, 두려움에서 신뢰로 나아가는 길, 미움과 배제에서 환대와 친교로 건너가는 길, 죽음 같은 삶에서 생명력 있는 삶으로 되돌아오는 길, 하느님께서는 이 길을 어떤 소수에게만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에게 열어 두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목숨을 내놓는 사랑 : 작은 내어줌의 일상성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지만, 그 사랑은 이미 일상의 작은 내어줌 속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목숨은 거대한 순교가 아니라 작은 자기중심성입니다.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 먼저 사과하는 것, 피곤해도 경청하는 것, 내 시간을 내어 병문안 가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화해를 선택하는 것,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이런 작은 죽음들이 모여 누군가를 살리는 생명이 됩니다. 십자가는 단지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는 모든 자리에서 반복됩니다.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 : 관계의 치유
세상은 끊임없이 나눕니다. 내 편과 네 편,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중심과 주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그러나 예수님은 흩어진 양들을 모으십니다. 갈라진 관계를 잇고, 끊어진 마음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 삶에서 착한 목자의 길은 승리보다 화해를 선택하고, 판단보다 자비를 선택하며, 배제보다 포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숫자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쓸모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존재로 사랑하십니다. 넘어졌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무서운 심판자를 믿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알고도 사랑하시는 착한 목자를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작은 목자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살리는 말 한마디, 누군가를 알아주는 눈길 하나,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인내 하나가 바로 착한 목자의 현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