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6,14–25
유다는 대사제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넘겨 주면
나에게 얼마를 주겠습니까?”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건넵니다.
그 뒤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제자들은 마음이 아파하며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나와 함께 손을 그릇에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이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죄를 단순한 ‘규정 위반’으로만 보지 않고,
사랑의 관계가 깨지는 사건으로 봅니다.
배신은 행동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정렬되어 있는지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유다는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사랑의 식탁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값’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레고리오의 관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하느님이 멀리 계셔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듯 보이면서도
실은 조용히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고,
작은 타협과 작은 계산이 쌓여
마침내 “은전 서른 닢”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유다만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는 성찰의 질문입니다.
• 나는 무엇을 ‘값’으로 계산하려 하는가?
• 사랑과 충실함을 지키기보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 그리고 내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러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폭로로 제자들을 무너뜨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진실을 드러내시되
그 진실이 회개의 문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성찰도 그러해야 합니다.
자기비난으로 끝나는 성찰이 아니라,
돌아갈 길을 여는 성찰.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질문이
단지 두려움의 말이 아니라
다시 주님께 마음을 돌리는 기도가 되게 하는 것.
오늘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의 작은 계산을 보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사랑을 값으로 바꾸지 않게 하소서.
작은 타협이 쌓여
마음을 멀어지게 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다시
당신께 정직하게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