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의 영성
작은 자의 길은 세상의 길과 반대로 흐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이 길은 내려가라고 초대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외치지만, 이 길은 비우라고 속삭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강요하지만, 이 길은 스스로를 내려놓으라고 요청합니다. 작은 자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바로 작은 자입니다. 그는 끝자리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자리는 사람들이 정해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이미 하게 주어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낮아져도 흔들리지 않고, 작아져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의 기쁨은 자기 안에서 나오지 않고, 하느님께로부터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의 마음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그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투명함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거저 받은 것임을 압니다. 재능도, 건강도, 시간도, 물질도, 덕행도, 신앙도 어느 하나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붙들지 않습니다. 받았기에 흘려보내고, 주어졌기에 나누어 줍니다. 그의 삶은 소유가 아니라 전달이며, 축적이 아니라 흐름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가난을 두려워합니다. 잃어버릴까 두렵고, 내려놓을까 두렵고, 비워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때로는 거짓으로 자신을 지켜냅니다. 자기 노력으로 이루었다고 믿으며, 자기 공로를 쌓고,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작은 자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하느님을 붙들 수 있는 손은 점점 좁아진다는 것을.
작은 자는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고 남이 틀렸다는 확신 속에서 분노가 자라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려 합니다. 단죄하기보다 품으려 합니다. 남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같은 연약함, 같은 한계, 같은 상처를 지닌 존재임을 알기에 타인의 잘못 앞에서 우월해지지 않습니다. 분노 대신 연민을 선택하는 사람, 판단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작은 자입니다.
작은 자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지닙니다.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든 비난하든, 그의 존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정받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고, 비난을 받아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소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바람과 같지만, 하느님의 시선은 뿌리와 같다는 것을.
작은 자는 선을 행하지만, 그 선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서 이루어진 선을 자기 공로로 삼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그래서 그는 선을 행하고도 조용하고, 열매를 맺고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조차 소유하려 합니다. 선한 일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 하느님의 일을 자기 업적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 순간, 선은 더 이상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는 끊어지고, 하느님과의 연결도 약해집니다.
작은 자는 자신의 죄를 깊이 슬퍼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어둠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빛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자기의 부족함보다 하느님의 충만함을 바라보고, 자기의 약함보다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합니다. 그는 자신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고치시도록 내어 맡깁니다.
작은 자는 성덕을 다르게 이해합니다. 성덕은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것임을 압니다. 더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비워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내려가는 것, 그 길이 바로 거룩함의 길임을 압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업적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작은 자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작은 자는 사람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 안에서도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죄 많은 사람, 세상이 외면하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람을 버리지 않으며,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비교하지 않습니다.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함께 머무르고, 함께 견디며, 함께 살아갑니다.
작은 자는 체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깊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 사실 안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자기가 전부인 사람은 무너지지만, 하느님이 전부인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자의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풍요로 바뀝니다.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채워질 공간이 되고, 작아짐은 실패가 아니라 은총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작은 자는 세상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낮은 자리에 머물지만 비굴하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며, 복음이 말하는 참된 작은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