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고 말한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위의 말씀은 당신과 시온의 관계에 대해 이사야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도와달라고 할 때 하느님께서 그에 맞춰 기껏 응답하시고 도와주셨는데
시온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버리셨고 잊으셨다고 투덜거린다고 하시면서
인간의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인 어미의 사랑과 당신 사랑을 비교하시며
여인은 자식을 혹 잊을지라도 당신은 결코 시온을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온이 아니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도 이렇게 엇박자 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곧 우리도 시온처럼 하느님께서 도와주셨지만,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지만, 그것이 은혜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엇박자란 무엇입니까?
쿵짝이 안 맞는 걸까요?
엇박자란 도움을 주실 때 도움받으면 엇박자가 아닌데,
또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면 엇박자가 아닌데
주실 때 안 받고 물 들어올 때 노 안 젓거나
물 빠지고 난 뒤에 노 저으면 그것이 엇박자지요.
우리에게 그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해가 떴는데 잠자거나 집구석에 처박혀있고,
봄이 왔는데 꽃구경하지 않고 TV나 보고
정성 들여 밥을 차려놨는데 그때 집을 나가곤 하지요.
그런데 이것은 주님께서 주실 때가 우리가 받을 때가 되지 못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그것이 도움이고 은혜라는 것을 몰라보고 무시한 것의 문제입니다.
또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늘 보고 계시는데 우리는
다른 것을 보는 곧 시선의 엇박자인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어린아이는 시선의 엇박자가 없습니다.
엄마는 늘 아이를 보고 아이도 엄마를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보신 대로 하시고 보시는 대로 하실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신 것,
그래서 주님께서 보신 것은 살리는 일이며,
그래서 주님께서 어제 삼십팔 년을 앓았던 병자를 고치신 것은 살리는 일이고,
이제 당신이 하실 일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을 하면 하는 일마다 죽이는 일이면 그것이 더 문제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렇게 하시는 주님을 문제적 인간이라고 보며
주님을 단죄하고 이내 죽일 텐데 실은 그렇게 심판만 해대는
바리사이들이 더 문제적 인간들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우리 사랑 사이에 엇박자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은혜와 우리 갈망 사이에 엇박자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시는 일마다 살리는 일만 하시는데
우리는 심판만 해대는 그런 엇박자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