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제게는 믿음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지론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론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 제가 이발소에 가서 이발하던 때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면도사가 목 부분을 면도할 때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문득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믿고 내 목을 맡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욱하는 생각에 그 날카로운 면도칼로 내 목을 찌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저의 목을 면도사들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고민했습니다.
나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그만하라고 할까?
다음부터는 믿지 못하는 표시로 더 이상 면도를 맡기지 말까?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믿기로 하겠다고.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는 않지만 믿어주겠다고.
사실 우리는 어떤 믿음이건 믿는 것입니다.
사기꾼이라고 믿건 좋은 사람이라고 믿건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믿음이건 긍정적인 믿음이건 믿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의 소유자는 누구든 안 좋은 쪽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누구든 좋은 쪽으로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나환자를 보면 주님을 믿기로 선택하고 주님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나환자가 어떻게 사람에게 다가옵니까?
주님이 아니라면 누가 다가오겠습니까?
그는 주님을 믿어야겠다고 선택하고 나온 것입니다.
다른 인간은 내쳐도 주님만은 환대하실 것이라고 믿은 것이고,
다른 인간은 고쳐주지 못해도 주님만은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믿음에 선택이라는 부분이 있다면
믿음에 은총이라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환자가 주님을 그렇게 믿게 된 데는 그의 선택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믿음을 주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고,
믿음을 주는 사람 또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환자가 다가간 것은 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믿음을 주셨고 그래서 주님께는 믿음이 가기에 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믿게 해주신 것이고,
주님께서 이렇게 믿게 해주실 때 나환자는
그 은총을 걷어차지 않고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믿음의 은총을 주실 때 믿기로 선택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