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강가에서, 작아지는 노래
(디도서 3,4-5)의 묵상
“우리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자와 사랑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올바른 일을 했다고 해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 나게 하시고 새롭게 해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디도서 3,4-5)
나는 오랫동안
내 손으로 만든 저울을 들고 살았습니다.
하루의 선과 악을 달아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며,
이만큼이면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저울은 내 숨결의 무게를 재지 못했고,
눈물의 깊이를 알지 못했으며,
밤마다 나를 깨우는 두려움을
조금도 가볍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옳음의 언어로 말했지만
사랑의 침묵을 배우지 못했고,
정결을 말했으나
가난한 마음으로 무릎 꿇는 법은 몰랐습니다.
내 의로움은 늘 단정했으나
내 심장은 자주 굳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번개처럼 나타나 나를 압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낮은 골짜기에서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오셨습니다.
내가 증명하기를 멈추자 당신은 가까워지셨고,
내가 변명할 말을 잃자 당신의 자비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성취를 기다리지 않으셨음을.
내가 더 나아지기를
조건으로 삼지 않으셨음을.
당신은 이미 사랑하고 계셨고,
이미 용서하고 계셨으며,
이미 나를 당신의 가난한 기쁨 안에
초대하고 계셨습니다.
자비는 내가 쌓아 올린 것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자비는 내가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나를 안전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비로소
작아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작아질수록 더 참된 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시여!
당신은 나를 씻기실 때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내 죄를 들추지 않고
내 존재를 새로 적어 주셨습니다.
물은 내 위를 흐르며 묻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저 말없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많이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더 높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허락하신 오늘 안에서
형제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상처 입은 이에게 판결이 아니라 자리를 내어 주고,
연약한 이에게 충고가 아니라 함께 앉는 시간을 건네며,
내가 옳을 때보다 당신의 자비가 드러날 때를
더 기뻐하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두와 같게 만들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
그러나 사랑받는 존재로.
이제 나는 내 의로움의 계산서를 찢고
당신의 강가에 앉아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은 채 숨을 쉽니다.
저를 씻기시는 당신 안에서 저는 충분합니다.
저를 다시 나게 하시는 당신 안에서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오늘, 작은 형제로 살아갈 용기를
당신의 자비로부터 조용히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