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는 길에서 부르는 벅찬 환희의 노래
회개란?
새로운 무엇을 배우는 일이 아닙니다. 낯선 진리를 하나 더 손에 쥐는 공부도 아닙니다. 회개는 이미 손에 가득 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 온 생각들, 이미 옳다고 확신해 온 판단들, 이미 안전하다고 착각해 온 태도들, 그 익숙함을 조용히 하나씩 비워 내는 고독한 의식입니다. 말을 더 잘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내 말이 얼마나 타인을 밀어내 왔는지를 마침내 알아차리는 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목소리를 높이던 입술을 닫고, 논리와 경험과 신념이라는 무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는 일.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는 그 오래된 계산법, 관계의 이름으로 포장된 인과응보의 법칙, 보상과 공정이라는 말로 정당화된 교환의 세계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일입니다.
회개는 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은근한 우월감에서 기꺼이 가난해지는 선택입니다. 회개는 사회적 지위라는 옷을 천천히 벗는 일입니다. 평판이라는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다듬던 손을 멈추고, 가정과 일터에서 거룩한 사람인 척 연기해 온 그 역할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진실을 삼켜 왔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합리화로 덮어 왔는지, 얼마나 자주 사랑 대신 자기방어를 선택해 왔는지 마침내 인정하는 일입니다.
비난 앞에서 본능처럼 튀어나오는 변명,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세우는 방어벽, 그 모든 반사작용을 멈추는 것. 가슴을 열고, 머리를 열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겨 두었던 방을 밝은 빛 아래 드러내는 일. 그토록 소중히 지켜 온 ‘나’라는 작은 왕국을 더 이상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때, 비로소 그동안 등지고 있던 타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길이 그때서야 열립니다.
우리는 잘못된 궤도 위에 올라타 있습니다. 그분은 끝없이 낮아지며 가장 작은 이들의 곁으로 내려가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늘 더 위로 오르려 합니다. 관계 안에 위계를 만들고, 비교와 평가로 자리를 나누고, 자부심과 오만이라는 벽돌을 쌓아 어떻게든 누군가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서려 합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거룩함이라는 화관을 씌웁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우위를 정당화합니다.
복음은 어느새 나의 평안과 내 가족의 안위와 내 삶의 안정만을 위한 영적 소비재가 되고, 나는 여전히 무대 한가운데 서서 인정과 박수를 기다립니다. 거짓 자아는끊임없이 발전하려 애씁니다. 더 나은 사람, 더 성숙한 신앙인, 더 존경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개선하려 듭니다. 그러나 그 비좁은 마음의 방에는하느님이 머무실 자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은 언제나 ‘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의 길을 막고 서 있는 우리 자신을 치우는 것뿐인데, “나만은 옳다”는 확신에 절여진 우리는 스스로 비켜설 힘마저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옵니다. 가까운 이의 차가운 침묵, 예상치 못한 실패,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관계,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우리가 믿어 왔던 안전장치와 방어기제, 인맥과 능력과 재력이라는 우상들이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 파편들 사이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홀로 남겨졌을 때 내가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스스로에게조차 낯설 만큼 초라한 존재인지를. 그러나 그 무너짐은 끝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성경의 하느님은 우리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수치심을 조용히 들어 올리십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설명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그저 어루만져 치워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마침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 투명한 고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느님이 나에게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지를. 자존심의 노예로 살던 내가 다시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리기 시작하는 순간을. 내가 사라진 자리, 모든 것이 비워진 황량한 빈터에 낮게 내려오신 그분이 머무십니다.
회개란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내어드리는 일. 아프지만 복된 항복, 나를 중심으로 만든 모든 가치 체계를 내려놓고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일이 말씀에 굴복하는 일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는 그 자유를 선물로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경험들이 깊은 만족으로 황홀감을 줍니다. 내려가야만 부를 수 있는 그분의 노래. 지금 여기서 부르는 그 노래가 감사와 감동과 감격의 벅찬 환희 속에서 감탄의 노래로 춤을 추면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