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오늘 복음은 어제 첫 번째 수난 예고에 이은 두 번째 수난 예고입니다.
그런데 이 예고를 하시면서 이 말을 귀담아들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은 주님의 수난 예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귀담아들었다면 귀담아들으라고 굳이 얘기하실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얘기를 뜯어보면 여전히 귀담아듣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고 복음이 얘기하지만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단정하냐 하면 그 뜻이 감춰져 있어서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지만
곧이어 하는 말이 그 뜻이 뭔지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싫어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나환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너무나 싫을 때 두려운 법입니다.
너무 싫을 때 두렵고 두려울 때 마주하기보다는 피하기 마련인데
제자들은 주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이 싫었고 두려웠으며
그래서 돌아가신다는 것의 뜻이 뭔지 묻는 것조차 싫었던 겁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본 제자들로서는
예수께서 그들에 의해 돌아가시리라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시지만
사람들은 주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것을 뛰어넘는 거라는 반응입니다.
사람의 업적을 뛰어넘는 신적 업적을 보면서
사람의 아들이기에 죽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믿기 어려웠고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건 그들의 꿈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꿈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인데
군중의 반응을 보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장밋빛 꿈 깨라고 하십니다.
당신은 사람의 아들이고 그래서 돌아가실 거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꿈 깨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자들처럼 못 들은 척하거나 못 알아듣는 척할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