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당신 누구신지와 관련하여 두 번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한 번은 군중이 누구라고 하는지 다른 한 번은 제자들이 누구라고 하는지.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이 두 번의 질문을 통해 볼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 곧 군중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하지 않고,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이 내겐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내게 어떤 분인지가 중요하기에
주님께서는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신 겁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다 주님을 사랑의 주님이라고 알고 있어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주님을 주지도 않고 가져가시는 분이라고 내가 믿는다면
주님이 아무리 사랑의 주님이시어도 내게는 고약한 주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제가 아직은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주님 체험을 한 다음부터 저는
주님이 사랑의 주님임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늘 풍성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행 책임을 제가 주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주님께서 주셨어도
그것이 저를 불행케 하려는 주님 뜻이라고 생각지 않고,
거기에 다 주님의 좋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주님 탓이 아니라
그 사람을 주신 주님의 뜻을 제가 헤아리지 못하여 불행해진 것입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주님을 이렇게 알고 믿고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믿고 살아갈지 그것이 관건입니다.
분명 인간적으로 제게 좋은 것은 점점 없어지고 고통은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게 고통이 없기를 빌지 않고, 고통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빕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