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오늘 하까이서는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독려하면서 성전을 짓기보다 자기 집을 먼저 잘 짓고 사는 백성을 나무라는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자랑스러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성당이 아니라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우리 공소 신자들은
공소 회장님을 중심으로 스스로 성당을 짓고 신부님을 모시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없던 시절 저희는 성미 곧 성당을 짓기 위한 거룩한 쌀을 모아,
땅을 사서 같이 농사지어 그 쌀로 더 큰 논을 사고 그렇게 건축기금을 마련했고,
성당을 지을 때도 어른들은 물론 어린 저희도 학교가 끝나면 벽돌이라도 나르며
사제의 도움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몸소 성당을 지은 자랑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진정 그랬습니다.
오늘 하까이 예언자가 나무라는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저희는 자기 집은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어도 주님의 집만은 잘 지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제가 부유해지면서 나의 공간을 소유하고 잘 꾸미면서
주님의 집에 대해서는 소홀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있을 곳은 더 이상 주님의 성전이 아니라 나의 집, 나의 방이 되었고,
내 마음은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아니라 나뿐인 내 왕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집이 아닌 자기 집은 자기만의 공간(Privacy)이 되었고,
이웃과는 담을 쌓고 사는 단절의 공간이 되어 자연 공동체는 깨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 개인주의가 요즘처럼 고립의 정신이 지배하는
혼밥, 혼술, 혼족 시대엔 점차 공간 이기주의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짐작하시듯 공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공간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공간 이기주의자가 시간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시간도 자기를 위한 시간만 있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까이 예언자는 다시 주님의 집을 지으라고 예언하고,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치라.”는 사명을 받은 프란치스고도
이제라도 주님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성전 건물이 아닙니다.
나의 벽과 집을 허묾으로써 이웃과 함께하는 주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적 형제애로 인간 중심주의를 허묾으로서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고,
피조물과 함께하는 우주적 공동체인 주님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