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의 힘 (막달라 마리아 축일에)
막달라 마리아의 간절하고 애타게 찾는 마음, 사람의 갈망과 마주하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호명.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가장 진실한 갈망을 대변하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도 그녀는 무덤으로 달려가 그분을 찾았습니다.
세상은 텅 빈 무덤만을 보여줬지만, 그녀는 단념하지 않았고, 그 애틋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으려는 그 갈망이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 그 호명의 힘, 예수님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심으로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나를 아시는 분”으로부터 들려오는 그 음성은 우리 존재를 일깨웁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됩니다.
인간의 갈망과 하느님과의 만남,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간절히 찾습니다. 의미, 사랑, 평안, 목적. 그리고 그 깊은 갈망이 예수님과의 만남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울며 부르짖는 순간들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찾느냐가 아닌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던지신 질문, 누구를 찾느냐?" (요한복음 20:15) 이 말씀은 단순한 정보의 탐색을 넘어 존재의 방향성과 관계의 본질을 묻는 깊은 질문입니다.
“무엇”에서 “누구”로, 갈망의 방향 전환
‘무엇’을 찾는 삶은 종종 조건, 성취, 해결책에 집착하지만, 예수님은 ‘누구’, 곧 인격적 관계를 통해 해답을 제시하십니다. 갈망의 중심이 사람과 만남으로 옮겨질 때, 우리는 진정한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질문 속 위로와 초대
예수님은 마리아의 눈물을 보시고,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읽으십니다.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은 하느님 자신을 향한 문을 여는 초대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름을 불림을 받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면 ‘누구’인지,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생각할 때,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의 호명은 단순한 이름 부름을 넘어서, 존재의 깊은 곳을 깨우는 부르심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그 한마디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살아났습니다.
호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관계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이름 없이 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 사람을 기억하시고,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존재의 회복, 상실과 눈물 가운데 있던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음성은 다시금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초자연적인 깨달음의 순간, 그전까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도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고요한 마음으로 멈춰 설 때, 삶의 혼란과 상실 속에서 예수님은 지금도 조용히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부르심은 위로이자, 초대이자, 사명입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의 현존 앞에 멈추는 일이고 머물러있음으로 그분을 느끼고 측은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대하시는 그분을 아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