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665 추천 수 0 댓글 15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옛날 형제들을 양성할 때 많이 얘기한 것이 성숙입니다.

양성이란 미성숙한 형제를 성숙한 형제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숙과 미성숙을 얘기하면서

제일 먼저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있느냐, 있다면 뭐냐고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바꿔 얘기하면 왜 사냐고 묻는 것이지요.

왜 사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성숙하고 방황하는 인생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방황이란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것인데

목적이 뚜렷이 없으니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출가해야 하는데 가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절에 가서 수행하려는 뚜렷한 목적으로 집을 나서면 출가인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집이 싫어서 무작정 집을 나서면 가출이지요.

 

그리고 가출하여 방황하는 미성숙한 인생은 열심히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갈 데가 없는데 어떻게 열심히 갈 수 있습니까?

딱히 갈 데가 없으니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어슬렁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떤 목적이든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야 열심히 살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사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그 목적이 단기적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는 대학 가는 것이 목적이고,

대학 가서는 취직하는 것이 목적이고,

취직해서는 결혼하고 애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버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죽는 것입니까?

죽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입니까?

 

일찍이 저는 이 인생 문제로 오랫동안 고뇌와 방황을 했고

그 인생길을 찾고자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찾다가 10여 년 만에 찾은 목적이

바로 사는 동안 행복한 것’, 죽어서 구원받는 것이고,

행복과 구원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 행복이요,

죽어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가는 이 길에 길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왜 사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찾기 위해 석가에게도 가고,

힌두 명상가들에게도 가고, 노자 공자에게도 갔지만

그 길을 찾지 못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길을 찾고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오늘 주님 말씀이 너무 소중하고 일생 감사하는 저인데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이 그런 말씀이기를 비는 오늘 저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4.04.26 05:48:04
    당쇠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1Nov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
    Date2024.11.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140
    Read More
  2. No Image 21Nov

    성모 자헌 축일-봉헌과 은총

    은총은 선물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일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며, 공로의 상급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애써 얻는 게 아니라 거저 받는 것이며, 그러기에 능동태가 아니라 완전한 수동태입니다.   하느님의 ...
    Date2024.11.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863
    Read More
  3. No Image 20Nov

    024년 11월 21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
    Date2024.11.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156
    Read More
  4. No Image 20Nov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오늘의 이 말씀을 우리는  마태오복음에서 탈렌트의 비유로 들었습니다.  표현이 마태오와 조금 다른 것도 있지만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루카복음은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마치면...
    Date2024.11.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55
    Read More
  5. No Image 20Nov

    연중 33주 수요일-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는데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이 임금이 될 귀족을 미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귀족은 자기를 미워하는 종들에게 미나를 맡기는 셈이 됩니다.   저 같으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미나를 맡기지 않을 텐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맡...
    Date2024.11.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734
    Read More
  6. No Image 19Nov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
    Date2024.11.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117
    Read More
  7. No Image 19Nov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씁니다.  그의 노력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집에 머물기로 하십니다.  그 모습에 자캐오는  지금까지의 삶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의 삶은 외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는 세관장이었고  그래서 사람들...
    Date2024.11.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2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 1519 Next ›
/ 151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