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중반 그무렵 명동성당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국미사가 자주 봉헌되었다.
그 미사에 참예 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구름처럼 모여 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12시 미사를 집전 하시고 나오신 추기경님 께서는 들머리에서 데모라는 학생들을
바라 보시고 계셨다.
나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성당 마당을 거니는데 화창한 6월의 초여름 날씨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성물판매소 까지 가려고 딸의 손을 잡고 뛰는데 성당마당에
추기경님이 우뚝 서 계셨다. 뒤에서 비서 신부님이 급히 우산을 펼치시며 추기경님을
씌어 드리려는데 추기경남께서 내딸을 가르키시며 " 여기 아이가 비맞고 있는데
얘를 씌워 줘야지" 하시며 우산을 받아 드시고 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한참을 서 계셨다.
독재정권의 불의에는 거룩하신 분노로 호통을 치시던 추기경님 이 돌아서시면 사랑과 연만의
부드러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 안으시는 정 깊고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이셨다.
나는 추기경님께서 성탄미사를 명동성당에서 집전 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없다.
서울시 쓰레기 하치장이였던 난지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미사를 봉헌하시고 그들과함께
떡국을 잡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몸붙여 살던 집에서 재개발이라는 허망한 정책에 밀려 하루아침에 오갈데 없었던 상계동 철거민 들에게 테니스장과 그옆의 공터에 천막을 치고 살게 하시고 자주 들르셔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위로해 주시고 정부가 그들의 갈곳을 마련하게 하시어 감동의
이별을 하셨던 거룩한 빈자 이셨던 우리의 추기경님 !!!
그해 1월 "탁" 하고치니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고 정부가 위장 하여 발표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고 경찰의 곤봉이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을 억압하는 끝장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었다.
늙은이가 젊은이의 장례를 치르던 어둠의 역사속을 헤매던 절망과 분노의 기억들.....
진실과정의를 갈망하던 국민적 분노가 6-29 선언을 이끌어 냈고 활화산처럼 불타는
그 투쟁의 중심에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있었고 추기경님께서 함께 하시어
버팀목이 되어 주셨음을 우리는 기억 하고 있다
그 암울하고 엄혹했던시절 추기경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서슬퍼런 정권의 공포스러운
군화발 앞에서 희망의 끈 을 놓지않고 견딜수 있었을까?
진정한 삶의 길을 몸소 걸으신 바보 할아버지 김 수환추기경님!!!
가끔은 엉뚱하신 유모어로 우리를 웃기기도 하셨지요
하늘나라 에서도 유모어를 즐기시는지요
위대하신 우리들의 성자 !!!
잊지못할 6월에
당신을 기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