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86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종교적 관점이든 아니든,
카톨릭의 관점이든 불교의 관점이든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각자의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욕심이든,
우리 모두를 위한 생각이든
인간은 좋음을 추구합니다.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생각의 범위는 생각보다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넓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음을 추구한다는 말이 너무 추상적으로 들려서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편안함을 추구하고,
맛있는 것을 원하며
여유를 즐기고 싶어합니다.
먼 거리를 걸어가기 힘들기에 차를 이용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손쉽게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음을 얻는 것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서 온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식량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기름까지
어느 것 하나 자연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즉 우리 삶은 자연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이용이라는 단어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달라고 요청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자연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에게 요구합니다.
자연은 그 요구가 벅차면서도
힘겹게 그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은 '조금 더'를 외쳤습니다.
자연이 베풀어주는 호의를 권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요구는 착취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은
창조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창세기의 첫 번째 창조 이야기처럼 요한복음도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두 문장은 서로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결국 같은 것,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이야기합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면서
반복을 통해서 복음은 그 내용을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같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이 같은 위치에 있다는 표현은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점에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다릅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을
꼭 우위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창조를
인간이 다른 피조물보다 높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호의를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이 지양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은 죄를 이야기하면서
계명과 연결시키기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연결시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9장에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거기에서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잘 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을
요한복음은 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지 않는 것을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이 다른 피조물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 생각은 자칫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올라갑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허락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고 싶습니다.
한계가 없는 존재는
신과 같은 존재이며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리에 서고 싶어합니다.
내가 하느님이 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하느님이 필요없습니다.
즉 자연을 우리의 형제자매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자연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그 결과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심판은
하느님께서 하시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 빛은
그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다가갑니다.
그 빛은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생명과도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즉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은
빛을 거부하는 것이며
스스로 생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심판을 통해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실로 인간은
자연을 형제자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그 찬미에 모든 피조물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에게서 나왔기에
서로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고
하느님을 찬미하자고 초대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형제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형제성은
각 피조물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방식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식물은 식물로서
동물은 동물로서
서로 다릅니다.
서로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있고
일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치의 모델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여주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른 위격이시며
서로 다르시면서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십니다.
즉 일치와 다양성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일치도
다양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나도 옳고 너도 옳으며
그렇게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전제로
우리는 하나를 향해 나아갑니다.
더 나아가 인간과 다른 피조물이 서로 다르지만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고
착취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음을 추구합니다.
그 길에서 자연과 함께
그 좋음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좋음은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83 늦가을의 묵상 늦가을의 묵상   빛과 침묵이 만나는 시간, 늦가을의 오후, 슬프도록 아름답고, 시리도록 눈부신 계절입니다. 늦가을의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을 때면, 나... 1 이마르첼리노M 2025.11.28 436
1682 저물어 가는 날에 저물어 가는 날에   날은 고요히 저물어 가고, 내 영혼도 조용히 그 시간을 따라갑니다.   하루를 마치는 저녁 해처럼, 내 삶도 조금씩 기울어가지만 그 기울어짐... 이마르첼리노M 2025.11.27 413
1681 흐름이 빚어내는 생명의 미학 흐름이 빚어내는 생명의 미학   숨을 쉬는 생명들, 흐름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체온과 맥박이 살아나고 잠자던 세포들이 꿈틀거립니다.   어둠이 가만히 웅크린 ... 이마르첼리노M 2025.11.24 472
1680 위로부터 오는 만족과 나눔의 기쁨 위로부터 오는 만족과 나눔의 기쁨   오늘 우리는 신앙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위로부터 오는 만족, 그리고 그 만족을 나누며 누리는 더 큰 기... 이마르첼리노M 2025.11.17 419
1679 빈 들에서 빈 들에서   쌀쌀한 바람이 빈들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이 넓은 자리에서 억새들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기도하듯 흔들리고, 가을은 소리 없... 이마르첼리노M 2025.11.16 397
1678 은총, 거저 주어진 선물 은총, 거저 주어진 선물     우리는 종종 업적과 공로에 근거하지 않은 은총, 곧 우리의 내면을 무장 해제시키는 은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진정... 이마르첼리노M 2025.11.14 419
1677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5 9. 성지순례를 마치는 날 리에티의 아침 여명은 저마다의 고유한 색을 드러내며 하루의 문을 엽니다.   호텔 앞 우산소나무 네 그루가 흐린 하늘 아래 고요히 서... 이마르첼리노M 2025.11.11 417
1676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4 8. 아시시를 떠나며 아시시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오기 쉽지 않을 거룩한 땅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이곳에서 보냈던 날들은 하나하나가... 이마르첼리노M 2025.11.11 386
1675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3 7. 아시시의 고요한 밤 달빛 서린 아시시 고요한 밤. 대성당은 흰빛으로 빛나고, 불빛은 땅으로 내리는 기도처럼 번진다.   일찍 잠들려 애썼으나 컵라면 한 그... 이마르첼리노M 2025.11.11 402
1674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2   4. 본조 르노 한국에서 날아온 이쁜 영혼들! 새날은 이미 고스란히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오늘 우리 마음의 밭에 뿌려질 말... 이마르첼리노M 2025.11.11 407
1673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1 성프란치스코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순례를 떠나며 어젯밤 자다 깨다 새벽을 맞았다. 설례는 마음과 순례에 따라올 여러 그림들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 길... 이마르첼리노M 2025.11.11 392
1672 구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간의 죄와 실수 구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간의 죄와 실수   자비와 선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의 은총 안에서 죄와 실수는 구원이라는 경험적 실제를 깨닫게 하는 정... 이마르첼리노M 2025.10.31 470
1671 가을 바람이 되어 전하는 편지 가을 바람이 되어 전하는 편지   아침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성당 앞 대나무 그늘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들국화 세송이,   바람결에 날리는 수도복 치맛자... 이마르첼리노M 2025.10.15 448
1670 안개비가 내리는 아침 안개비가 내리는 아침   안개비가 내리네 호박색깔 벼이삭에   안개비가 내리네 청춘을 자랑하는 가을 채소밭에   안개비가 내리네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정치... 이마르첼리노M 2025.10.12 421
1669 묵주기도 묵주기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라는 장엄한 성화(聖畫) 앞에서, 성모님의 푸른 망토 아래 관계의 신비를 관상하는 기도.   묵주알 하나하나가 기억의 ... 이마르첼리노M 2025.10.07 434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22 Next ›
/ 12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