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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8.10.27 09:02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조회 수 608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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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가 정반대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잘잘못을 강조하지만,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으로
용서를 강조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가 일치를 이루시기 때문에,
더 나아가 요한 복음의 표현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다르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랑과 정의도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 밭 주인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인은
한 해 만 더 기다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한 번 더'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우리의 닫힌 귀와 무딘 마음을 아시고
한 번 더 들어보고 생각해 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말씀은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도 끊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기를,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다시 향하기를
기다립니다.
하느님의 그 기다림이 한계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기다림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다시 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렇게 우리는 불행해집니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하느님의 모습을
무서운 하느님, 심판의 하느님으로
그리곤 합니다.
즉 하느님의 정의는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고 거부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께로 눈을 돌리라고,
당신께 돌아오라고 재촉하십니다.
그 사랑에 응답할 수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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