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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어도 선행을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선행이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니 애초부터

바라지 않고 이 세상 행복을 위해서 선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행 그 자체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준다면

어찌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많은 경우 더 받는지 이 문제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 더 손해를 보고,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고통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고통은 선한 사람이건 악한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선행 그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선행을 한다는 걸.

 

그리고 또 알아야 합니다.

선행이 우리에게 선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요 그래서 행복해지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주거나 인간의 선행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가야지만 구원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께 가는 것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슨 선행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부자청년에게 다른 모든 좋은 것을 했어도 그것으로는 완전치 않으니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하느님께 가는데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것으로 사랑의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자청년이 어려서부터 지켜온 십계명 중

대인계명對人誡命 일곱 개로는 부족하고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사랑에 있어서도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는 더더욱 부족하고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매우 소극적인 사랑의 실천일 뿐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죽이지 않는 것이지 살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는 것은 탐내거나 훔치지 않는 것이지

가진 것을 나눠주는 적극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제 주변에 계신 분들은 확실히 적극적인 사랑실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얼마 전에 탈북자 모자가 고춧가루만 남겨놓고 죽은 것이 발견되고,

그것이 아사로 추정된다고 하자 너무도 마음들 아파하며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고 저에게 얘기해오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시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적극적인 사랑을 가르치셨고 또 요구하시는 거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당신의 추종자를 많이 만들고 싶은 그 욕심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따라야만 아버지 하느님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야 하고,

사랑을 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소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모범을 따르는 적극적인 사랑을 해야 함을

깨닫는 오늘, 결심을 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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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19.08.19 09:04:04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19.08.19 09:03:37
    18년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사랑이 완전하려면)
    http://www.ofmkorea.org/138966

    15년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나의 선행이 아닌 주님을 따름으로)
    http://www.ofmkorea.org/81350

    10년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완전해지려거든)
    http://www.ofmkorea.org/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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