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만 가지고 보면 누구에게
무엇을 청하라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제 하신 말씀과 뒤에 나온 말씀을 놓고 볼 때
아버지께 다시 말해 하늘의 아버지께 청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청하라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고,
필요한 것이 좋은 것이라면 주실 거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나쁜 것이면 아버지는 주지 않으실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런 의문을 가져 봄도 좋을 것입니다.
청하면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하시는데 청하지 않으면 안 주실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은 괜히 주님 말씀에 시비 걸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왜 청하라고 하시는지,
우리는 왜 청해야 하는지 그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청하지 않으면 뭘 원하는지 아버지가 모르기 때문에,
또는 청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을 아버지이기 때문에 청하라시는 것입니까?
복음의 다른 데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선 이미 다 아신다고 하셨고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 인간 아버지도 좋은 것을 줄 줄 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의 아버지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으시겠느냐? 하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 아비보다도 그리고 나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이시고 청하지 않아도 주실 참으로 좋으신 분이신데 왜?
왜 청해야 합니까?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청하지 않으면 안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청하지 않아도 주시지만 우리는 청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기와 엄마의 경우에 비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가 청하지 않아도 엄마는 밥을 주지요.
그러나 아기는 안 먹겠다고 하곤 하잖아요?
하느님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은총으로 곧 거저 주고자 하십니까?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라고 하는 우리 가운데서도 그런 은총은 필요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고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기 보다 내 힘으로 소유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끝에 성령을 주시지 않겠냐고 주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최고선이신 당신 성령을 주시고자 하지만
우린 그것 말고 다른 걸 달라고 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청하지 않곤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종종 엇갈림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주시겠다는 하느님과 아무 필요 없다는 우리,
최고선을 주시겠다는 하느님과 다른 것을 달라는 우리,
더 좋은 때 주시겠다는 하느님과 지금 당장 달라는 우리 사이의 엇갈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이런 엇갈림이 없지 않은지,
어떤 엇갈림이 우리에게 있는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