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26.07.26 00:26

몸값에 대한 이해

조회 수 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몸값에 대한 이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8)

 

몸값으로 바친 목숨은 관계를 회복하는 사랑입니다 '몸값'이라는 말은 노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르는 값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폭력으로 사람을 지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죄와 두려움, 자기중심성에 묶여 있던 인간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끝까지 내어주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생명을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내어주는 사람이 참된 생명을 얻는다는 복음의 역설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1. 프란치스칸 신학적 접근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의 신학 안에서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를 이해하면, 단순히 "죄값을 대신 치르신 대속(代贖, 8세기 신학자 안셀무스)"이라는 법률적 관점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과 온 우주를 완성으로 이끄는 자기 내어줌이라는 훨씬 깊고 아름다운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스코투스는 안셀무스나 후대의 일부 서방 신학에서 강조된 "하느님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반드시 대가가 필요했다"는 논리를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을 위해 행동하시는 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먼저 하느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역사 안에서 끝까지 자신을 내어준 사건입니다.

 

몸값은 하느님 사랑의 가격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입니다.

스코투스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거래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만큼 죄를 지었으니 이만큼 값을 치러야 한다."고 계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랑은 계산보다 먼저 존재합니다. 따라서 몸값은 누구에게 지불된 금액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 갇힌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당신 존재 전체를 선물로 내어주신 사건입니다. 몸값은 가격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육화 자체가 이미 구원의 시작입니다.

스코투스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는 "절대적 그리스도 중심성"입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그리스도는 오셨을까?" 스코투스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왜냐하면 육화는 죄 때문에 생긴 임시방편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창조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역시 단순히 죄를 해결하기 위한 응급조치가 아니라, 육화의 사랑이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완성입니다.

 

몸값은 관계를 회복하는 자기 내어줌입니다.

죄의 가장 깊은 본질은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이 모든 관계를 다시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그래서 몸값은 죄에 대한 벌금을 대신 낸 것이 아니라, 끊어진 관계를 사랑으로 다시 연결한 사건입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이것을 관계의 회복이라고 이해합니다.

 

둔스스코투스와 피에르 신부의 몸값에 대한 이해

둔스 스코투스의 신학과 엠마우스 창시자 피에르 신부의 삶은 매우 깊은 곳에서 만납니다. 두 사람 모두 '몸값'을 거래나 법적 배상이 아니라 사랑의 자기 증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합니다. 피에르 신부는 복음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은 인간의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다"는 점을 삶으로 증언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 안에 있는 존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복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엠마우스 공동체도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 다른 사람을 돕는 상호 존엄의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스코투스와 만납니다. 스코투스에게 그리스도의 몸값은 하느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아닙니다. 인간을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자기 증여입니다. 따라서 몸값은 "죄값"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을 회복시키는 사랑의 사건입니다. 피에르 신부 역시 같은 방향으로 복음을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자기 손으로 일하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르코 복음의 "많은 이들의 몸값"은 세 단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값은 죄에 대한 벌금을 대신 내는 돈이 아닙니다. 몸값은 한 사람의 존엄을 되찾아 주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몸값은 사랑받은 사람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생명의 순환입니다. 이 마지막 지점은 프란치스칸 영성과도 정확히 이어집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도우면서 단순히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닙니다. 나환자를 형제로 만났습니다. 피에르 신부도 거리의 노숙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세상을 만드는 동료로 만났습니다. 스코투스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이 인간 안에서 계속 육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결국 세 사람은 같은 복음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내 목숨을 내어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둔스 스코투스는 "그 몸값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자신을 선물하는 사건이다."라고 해석합니다. 피에르 신부는 "그 몸값은 거리의 가장 가난한 사람의 잃어버린 존엄을 되찾아 주는 사랑이다."라고 삶으로 증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몸값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치른 가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시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어준 생명입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에서는 이것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상호 내어줌이 그리스도의 육화를 통해 역사 안으로 흘러들어온 사건으로 이해하며, 피에르 신부는 그 신학을 엠마우스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구현한 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도구적 존재로서의 몸값

바로 여기에 프란치스칸 신학의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 있습니다. 둔스 스코투스와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피에르 신부를 하나로 연결하는 핵심은 도구적 존재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관계를 통하여 흘러갑니다. 그래서 몸값은 십자가 위에서 한 번 이루어진 사건이면서 동시에 오늘도 우리의 관계 안에서 계속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도구적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몸값은 상대를 대신하여 무엇을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다움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실패하여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자녀에게, "괜찮다. 너는 성적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 주는 부모는 그 순간 몸값이 되어 줍니다. 비난보다 존재를 먼저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다시 살려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쉽게 상대를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억지로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리시고, 견디시고, 함께 계셨습니다. 배우자가 힘들어할 때 정답을 주기보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형제가 실수했을 때 먼저 이해하려는 것.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인내를 대신 살아내는 도구가 됩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선이 흐르도록 길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도구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붓은 화가를 드러내고, 피리는 연주자를 드러내며, 성체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도구적 존재는 "내가 옳다." 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 관계 안에서 흘러가기를 바랍니다."를 먼저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 프란치스코가 말한 작은 형제의 길입니다. 누군가의 짐을 함께 져 주는 것입니다. 피에르 신부는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라는 뜻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도구적 존재는 상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지지 않도록 함께 짐을 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병원에 찾아가는 일, 전화 한 통, 문자메시지 하나, 말없이 곁에 앉아 있는 시간. 이 작은 행위들이 바로 몸값의 현재성입니다.

 

선의 순환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에서 몸값은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이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내가 용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내가 존중받으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흐르듯이, 우리의 관계도 선의 흐름이 계속 이어질 때 몸값은 오늘도 살아 움직입니다. 프란치스칸적으로 말하면 도구적 존재는 "내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둔스 스코투스의 신학 안에서 몸값은 사랑의 자기 증여이며, 피에르 신부에게는 가난한 이의 존엄을 일으켜 세우는 삶이고,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작은 형제로 살아가는 존재 방식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몸값은 거창한 영웅적 희생이 아니라, 매일의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그리스도의 육화가 계속되는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몸값에 대한 이해 몸값에 대한 이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8)   몸값으로 ...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7.26 5
1917 기억의 계절에서 육화와 창조의 계절로 기억의 계절에서 육화와 창조의 계절로 마음의 가장 깊고도 고요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던 기억들은 어느 날 문득 언어의 옷을 벗고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듭니... 이마르첼리노M 2026.07.24 19
1916 詩보다 아름답고 달빛보다 부드러운 기억의 계절 詩보다 아름답고 달빛보다 부드러운 기억의 계절   마음의 가장 깊고도 고요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던 기억들은 어느 날 문득 언어의 옷을 벗고 우리 삶 속으로... 이마르첼리노M 2026.07.24 18
1915 기도와 영적 여정 5. 기도는 관계를 낳고, 관계는 그리스도를 낳는다 기도와 영적 여정 5. 기도는 관계를 낳고, 관계는 그리스도를 낳는다   사랑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육화된다.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 이마르첼리노M 2026.07.23 26
1914 기도와 영적 여정 4. 육화, 기도의 방향을 바꾸다 기도와 영적 여정 4. 육화, 기도의 방향을 바꾸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놀라운 사건 위에 세워져 있... 이마르첼리노M 2026.07.22 32
1913 기도와 영적 여정 3. 하느님께로 오르는 사다리와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하느님 기도와 영적 여정 3. 하느님께로 오르는 사다리와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하느님   상승의 영성에서 육화의 영성으로 기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오랫동안 하... 1 이마르첼리노M 2026.07.21 42
1912 기도와 영적 여정 2.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발견되는 것이다 기도와 영적 여정 2.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발견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찾아왔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 1 이마르첼리노M 2026.07.21 42
1911 기도와 영적 여정 1. 올라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려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여정 기도와 영적 여정 1. 올라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려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여정 &quot;당신이 잡은 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포기하지 마... 이마르첼리노M 2026.07.19 53
1910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9. 갈망은 마침내 사랑이 된다.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9. 갈망은 마침내 사랑이 된다.   갈망의 길은 끝내 사랑의 길이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하느님을 찾습니다. ... 이마르첼리노M 2026.07.18 47
1909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8. 갈망을 불꽃으로 바꾸시는 성령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8. 갈망을 불꽃으로 바꾸시는 성령   갈망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지만 스스로 꽃을 피울 수는 없습니다. 흙이 필요... 이마르첼리노M 2026.07.17 52
1908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7 회개, 갈망이 방향을 되찾는 순간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7 회개, 갈망이 방향을 되찾는 순간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기 전에 사랑의 방향을 되찾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회... 이마르첼리노M 2026.07.16 50
1907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6.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갈망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6.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갈망   우리의 삶은 언제나 질서보다 혼돈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려고 하면서도 미워하고, 용서... 이마르첼리노M 2026.07.15 53
1906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5. 십자가, 두 갈망이 하나되는 자리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5. 십자가, 두 갈망이 하나되는 자리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의 표지라고 말합니다. 힘을 잃은 사람의 마지막 자리이며, 아무것도 할 수... 이마르첼리노M 2026.07.14 52
1905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4 당신도 나를 원하십니다.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4. 당신도 나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오래도록 자신만이 하느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광야를 지나며 기도하는 것도 내가... 이마르첼리노M 2026.07.13 64
1904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3.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3.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복음은 언제나 한 사람의 갈망을 찾아옵니다.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마음속 깊... 이마르첼리노M 2026.07.12 57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8 Next ›
/ 12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