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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피는 꽃처럼 새로 태어나는 믿음은 오래갑니다.

 

늦게 피는 꽃이 오래 갑니다. 우리의 믿음은 늦었더라도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실이 믿음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함은 복음을 낡은 관습으로 만들고, 습관은 살아 있는 관계를 형식으로 바꾸며, 열심은 때로 사랑보다 의무를 앞세우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지식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니코데모에게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교리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방식으로 나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에는 늦음이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늦게 피는 꽃이 오래 갑니다. 충분히 뿌리를 내린 꽃은 쉽게 지지 않고 오래도록 향기를 남깁니다. 너무 일찍 피어난 꽃은 화려할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 못하지만, 긴 기다림 속에서 생명의 힘을 모은 꽃은 계절이 깊어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여운을 남깁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늦게 피어난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랜 기다림과 수많은 실패, 눈물과 침묵을 통과한 믿음은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품어 주고, 서두르기보다 기다려 주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기보다 하느님의 뜻을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공생활은 겨우 삼 년이었지만, 그 삼 년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은 나자렛에서의 서른 해 숨은 삶이었습니다. 세상은 공생활을 기억하지만 하느님은 숨은 시간을 먼저 준비하셨습니다. 목수의 손으로 나무를 다듬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 평범한 하루하루가 십자가를 견딜 힘을 길러 주었습니다. 세상은 결과를 보지만 하느님은 과정을 먼저 빚으십니다. 사람은 꽃이 피는 순간을 기억하지만, 하느님은 뿌리가 자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짧은 공생활은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 역사 안에서 가장 오래가는 믿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오래가는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초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더 깊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예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할 때에도 먼저 용서하시고,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에도 먼저 믿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출발이며 모든 믿음의 기둥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먼저 사랑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어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랑은 결코 나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사랑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를 끝없이 내어주시며 생명을 흘려보내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도 언제나 선의 흐름으로 나를 향합니다. 삼위일체의 사랑은 서로를 붙잡아 두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이며,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관계를 살리고 생명을 일으키며 자유를 자라게 합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 사랑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흐르고 있는 그 사랑을 신뢰하고, 그 흐름을 막지 않으며, 나 자신을 그 사랑 안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과정의 선이 결과의 선으로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용기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결과를 보고 하느님의 선하심을 판단하려 하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과정을 통하여 결과를 빚으십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싹을 틔우고, 뿌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깊이를 더한 뒤에야 꽃을 피웁니다. 하느님의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해되지 않는 시간, 침묵뿐인 기도,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들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선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으로 사용하십니다. 믿음은 그 과정을 견디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진실은 평온한 날보다 상처받는 날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일이 내 뜻대로 풀릴 때는 누구나 하느님이 선하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받고, 배신을 당하고, 애쓴 만큼 인정받지 못하며,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놓지 않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선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방해받고 상처받는 자리에서조차 하느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반드시 관계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은 관계이시며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되다면 우리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난폭한 아버지에게서는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욕망과 기준에 맞추어 끊임없이 조종하려는 어머니에게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곳에는 두려움이 자라고, 통제로 사람을 붙잡는 곳에는 자유가 사라지며, 소유하려는 사랑은 결국 생명을 메마르게 합니다. 하느님은 결코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억지로 따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리셨고, 존중하셨으며, 자유롭게 초대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배반하는 제자도, 의심하는 제자도, 도망치는 제자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참된 권위는 지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서 나오며, 참된 믿음은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느님의 사랑에 변화되어 그 사랑이 나를 통하여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이 내 삶을 통과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내가 사라질수록 그분의 사랑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내가 비워질수록 그분의 생명은 더 자유롭게 흐르며, 내가 내려놓을수록 하느님의 나라는 더 깊이 자라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평생 배우고 살았던 내적 가난의 길이며, 작음의 길이고, 형제성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새로운 믿음을 피워 내고 계십니다. 늦게 피는 꽃이 오래가듯, 늦게 익은 믿음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말보다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기다려 주는 한마디, 용서하는 침묵, 상대를 존중하는 눈빛,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 안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하느님의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늦게 피는 믿음은 늦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시간을 닮은 믿음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오랫동안 시들지 않고, 관계 안에서 생명을 꽃피우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향기로 세상을 살리는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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