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 (시 96,1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셨도다. 이 두 말씀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실은 하나의 구원의 흐름 안에서 깊이 이어져 있습니다. 앞의 말씀은 하느님 안에 사는 이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빛과 기쁨을 노래하고, 뒤의 말씀은 그 빛과 기쁨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 줍니다. 의인에게 솟아오르는 빛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광채가 아닙니다. 마음 바른 이에게 차오르는 기쁨도 세상 형편이 좋아서 얻게 되는 얕은 만족이 아닙니다. 그 빛과 기쁨은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선물입니다. 곧 외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끝이 없는 사랑, 멸망이 아니라 생명을 원하시는 사랑, 심판보다 구원을 먼저 선택하시는 사랑에서 솟아나는 은총입니다.
의로움이란 자기 자신을 옳다고 증명하는 단단한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자신을 열어 놓는 가난한 태도입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남보다 흠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고 그분의 빛이 들어오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빛으로 살려 하면 쉽게 타인을 판단하게 되고, 자기 의로움에 기대어 서려 하면 금세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내신 외아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빛을 생산하려 애쓰지 않고, 이미 주어진 빛을 받아 살아갑니다. 그 빛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소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상처 난 마음을 비추고, 지친 영혼을 따뜻하게 덥히며, 길을 잃은 사람 앞에 조용히 길이 되어 줍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깨끗한 사람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상, 모순과 상처로 가득한 세상, 자주 길을 잃고도 스스로 길을 안다고 착각하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을 버리고 등을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방식으로 드러났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오시고, 영원하신 분이 유한한 인간의 삶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시며 우리를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운명을 함께 짊어지시는 분이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교리를 머리로 동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 어둠보다 하느님의 빛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죄와 한계보다 하느님의 자비가 더 깊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자주 무너지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나를 멸망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약속 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를 억지로 완전한 사람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가난함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때 빛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고, 기쁨은 억지 웃음이 아니라 생명 깊은 곳에서 조용히 피어오르게 됩니다.
프란치스칸의 마음으로 이 말씀을 묵상하면, 빛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 기울어지는 사랑의 움직임입니다. 하느님의 빛은 힘 있는 곳보다 약한 곳에 먼저 내려앉고, 이미 충분한 사람보다 목마른 사람 안에서 더 환히 빛납니다. 마음 바른 이의 기쁨은 많이 소유해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사랑하셨음을 아는 데서 오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참된 기쁨은 움켜쥠이 아니라 놓아드림에서 태어나고, 참된 빛은 높아짐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때 우리 안에서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빛나려는 조급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비추도록 허락하는 겸손입니다. 세상을 판단하며 서 있기보다, 세상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멸망의 언어가 많은 시대에 생명의 언어를 선택하고, 냉소가 쉬운 시대에 기쁨의 증인이 되며, 자기 보존이 당연한 시대에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그 빛과 기쁨은 마침내 우리 자신을 넘어, 우리가 만나는 이웃의 어둠과 슬픔 속에도 조용히 번져 가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