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라든 손, 오그라든 마음
아침 식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눈을 오래 바라보지 않습니다.
김이 오르는 국그릇 위로 말 대신 피로가 먼저 올라오고,
괜히 숟가락 소리만 커집니다.
말을 꺼내면 상대가 다칠까 두려워서,
혹은 내가 다시 설명해야 할까 지쳐서
관계는 조용히 오그라듭니다.
이전에는 “괜찮아?”라는 말 하나면 서로의 하루가 열렸는데,
이제는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도 묻지 않기로 합의한 사이가 됩니다.
오그라든 관계는 폭력이 아니라 피로의 모양을 하고 옵니다.
문을 세게 닫지 않고 전화도 끊지 않지만
대신 마음의 방문을 살짝 덜 여는 방식으로 서로를 멀리합니다.
가난한 마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로 자신을 세우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어느새 말하지 않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법을 배워 버렸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관계는 오그라듭니다.
기도를 하려고 앉아 있으나 기도보다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함께 살아서 더 자주 상처 주고 더 깊이 피로해진 얼굴.
크게 다투지 않습니다. 서로를 헐뜯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하루를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괜찮아?”라는 말이 형식이 될까 두려워
아예 건너뛰는 순간, 관계는 조심스럽게 접힙니다.
침묵의 식탁에서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남고
누군가의 한숨은 기도처럼 삼켜집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겸손인지 체념인지
스스로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프란치스칸의 가난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지
자기를 지우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종종 자기를 지움으로 평화를 유지하려 합니다.
관계는 평온해 보이나 살아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프지만 말하지 않고,
누군가는 외롭지만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오그라든 관계는 죄가 아니라 지친 사랑의 자세입니다.
얼굴을 마주하며 살지만 마음은
각자의 감방에 조용히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십니다. 이 오그라듦이 냉담이 아니라
상처 난 손을 더 다치지 않게 하려는 본능적인 움츠림임을.
주님, 우리의 오그라든 관계 안에서도
당신의 평화가 이미 일하고 있음을 믿게 하소서.
형제를 껴안을 힘이 없을 때에도 형제를 밀어내지 않을 은총,
사랑이 식은 날에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용기,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사랑하지 못하는 날에도 해치지 않을 선택,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평화가 이미 일하고 있음을 믿게 하소서.
오그라든 관계 안에서 당신은 여전히
작고 조용하게 형제의 얼굴로 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