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를 담을 자리
아침 설거지통에 남아 있는 어젯밤의 찌든 기름기처럼
내 마음에도 오래된 방식들이 남아 있습니다.
옳다고 믿어왔던 말투,
상처를 입지 않으려 미리 쥐고 있던 판단,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스스로에게 내린 조용한 면죄부.
그런데 당신의 말씀이
오늘도 관계 한복판으로 들어옵니다.
성당 제대 위가 아니라
회의실의 긴 테이블 위로,
가정의 식탁 위로,
형제의 한숨과 자매의 침묵 사이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 말은 더 열심히 하라는 요구가 아니고
더 단단해지라는 명령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었다고 믿어온
그 ‘단단함’을 기꺼이 내려놓으라는 초대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알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은 결코 기존의 틀에 맞추어
길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성공한 성인의 옷이 아니라
찢기기 쉬운 가난의 천을 입었습니다.
찢어질 위험을 알면서도
그 안에만 새 포도주의 숨결이 머무를 수 있음을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옳다고 말하고 싶을 때 침묵하게 만들고,
상대를 고쳐주고 싶을 때 함께 울게 합니다.
논리로 이기고 싶은 순간에 사랑으로 져주게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부대는 이 포도주를 견디지 못합니다.
‘항상 그래 왔어’라는 말,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는 단정,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라는 자기보호의 가죽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터져 버립니다.
새 부대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태도입니다.
서로를 소비하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지 않으며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틀리지 않을 자유보다
사랑할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일상에서
새 부대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오늘도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에서,
내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형제의 사정을 끝까지 들어주는 침묵에서,
‘옳음’ 대신 ‘함께 있음’을 택하는
작고 느린 선택에서,
새 포도주는 그렇게 흘러들어 옵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으로.
주님!
저를 새 부대로 빚어 주소서.
단단한 확신보다 잘 찢어지는 연약함을 허락하시고,
닫힌 안전보다 터질 위험이 있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그래서 오늘 만나는 사람 안에서,
이 갈등의 자리 안에서,
이 불완전한 공동체 안에서
당신의 새 포도주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