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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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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를 담을 자리

 

아침 설거지통에 남아 있는 어젯밤의 찌든 기름기처럼

내 마음에도 오래된 방식들이 남아 있습니다.

옳다고 믿어왔던 말투,

상처를 입지 않으려 미리 쥐고 있던 판단,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스스로에게 내린 조용한 면죄부.

그런데 당신의 말씀이

오늘도 관계 한복판으로 들어옵니다.

성당 제대 위가 아니라

회의실의 긴 테이블 위로,

가정의 식탁 위로,

형제의 한숨과 자매의 침묵 사이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그 말은 더 열심히 하라는 요구가 아니고

더 단단해지라는 명령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었다고 믿어온

단단함을 기꺼이 내려놓으라는 초대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알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은 결코 기존의 틀에 맞추어

길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성공한 성인의 옷이 아니라

찢기기 쉬운 가난의 천을 입었습니다.

찢어질 위험을 알면서도

그 안에만 새 포도주의 숨결이 머무를 수 있음을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옳다고 말하고 싶을 때 침묵하게 만들고,

상대를 고쳐주고 싶을 때 함께 울게 합니다.

논리로 이기고 싶은 순간에 사랑으로 져주게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부대는 이 포도주를 견디지 못합니다.

항상 그래 왔어라는 말,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는 단정,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라는 자기보호의 가죽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터져 버립니다.

 

새 부대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태도입니다.

서로를 소비하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지 않으며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틀리지 않을 자유보다

사랑할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일상에서

새 부대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오늘도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에서,

내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형제의 사정을 끝까지 들어주는 침묵에서,

옳음대신 함께 있음을 택하는

작고 느린 선택에서,

새 포도주는 그렇게 흘러들어 옵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으로.

 

주님!

저를 새 부대로 빚어 주소서.

단단한 확신보다 잘 찢어지는 연약함을 허락하시고,

닫힌 안전보다 터질 위험이 있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그래서 오늘 만나는 사람 안에서,

이 갈등의 자리 안에서,

이 불완전한 공동체 안에서

당신의 새 포도주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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