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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한 가운데서 (마르 1,29-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마르코 1,34)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다양한 치유마귀를 몰아내는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한 기적의 나열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한가운데 와 있다는 선포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사건으로 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몸으로 일어나는 해방의 사건입니다.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며, 억눌린 이들이 일어서는 순간 자체가 하느님 나라가 너희에게 다가왔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치유와 구마는 사랑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지배하거나 강요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회복시키는 권위입니다. 병과 악령은 인간을 분열시키고 고립시키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을 관계와 공동체 안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악은 단순한 도덕 실패가 아니라 비인간화의 힘입니다. 구마 이야기에서 귀신은 단지 개인의 죄가 아니라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떼어 놓는 비인간화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구마는 네가 더 이상 그것이 아니다. 너는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다.”라는 선언이며, 존엄의 회복입니다.

 

복음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과 삶 전체를 구원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영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습니다. , 감정, 관계, 사회적 배제까지 포함한 전인적 구원이었습니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삶의 질서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치유는 개인적 기적을 넘어 관계의 회복입니다. 치유받은 이는 단지 건강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고, 만지고, 예배하고, 공동체 안에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곧 치유는 관계 안으로 돌아오는 길이며,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길이 다시 열리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초대입니다. 병과 악령,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늘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하십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구마는 두려움의 세계에서 신뢰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초대입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치유·구마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나라는 인간을 다시 사람답게 살게 하는 해방과 관계의 사건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분은 높은 연단 위에 서서 완벽한 말의 구조로 하늘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다가오신 곳은 말보다 신음이 먼저 새어 나오는 자리였으며 이름보다 병명이 먼저 불리던 삶의 가장자리였습니다. 복음은 그분의 입술에서 시작되었지만 완성은 늘 사람의 몸에서 일어났습니다. 오그라든 손이 펴지고 닫힌 혀가 풀리며 눈이 빛을 다시 기억해 낼 때, 그분의 말씀은 생명의 맥박을 다시 뛰도록 하십니다. 그분은 선언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나 그 나라는 천상에 펼쳐진 도면처럼 멀리 걸려 있지 않고 발열로 떨리는 이마 위에, 상처 난 손바닥 위에, 밤새 귀신과 씨름하던 지친 가슴 위에 이미 내려와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악해서 묶여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너무 오래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름 대신 비명이, 의지 대신 경련이, 관계 대신 고립이 그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토론하지 않으십니다. 설득하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짧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여라. 그에게서 나가라.” 그 말씀은 어둠을 밀어내는 큰 소리가 아니라 거짓 자아를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하는 사랑의 무게였습니다.

 

악은 늘 사람을 조각냅니다. 몸과 마음을 떼어 놓고 나와 나를 분리시키며 타인을 위협으로 보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구마는 그 조각들을 다시 모으는 일, “너는 분리된 너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다. ”라고 존재를 다시 봉합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치유 또한 그렇습니다. 그분은 병을 혐오하지 않으셨고 환자를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숨을 멈추던 순간, 그분은 손을 뻗으셨으며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피하던 몸을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만지셨습니다. 그 접촉은 의학적 기술 이전에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의 몸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너를 지나치지 않으신다.” 치유는 통증이 사라지는 일이기 전에 두려움이 물러나는 일이었고, 구마는 악령이 떠나는 사건이기 전에 사람이 다시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치유받은 이들은 다시 말하고, 다시 걷고, 다시 식탁에 앉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증거가 아니라 관계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죄책감을 쌓아 올리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억눌린 숨을 풀어 주는 해방의 언어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믿음이란 무언가를 증명하는 힘이 아니라 자기 손에서 자기 삶의 통제권을 내려놓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용기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강한 이들의 성취가 아니라 회복된 약함이 서로를 알아보는 공간이입니다. 그 나라는 완벽해진 사람들로 채워지지 않고 다시 숨 쉬게 된 사람들로 조용히 확장됩니다. 오늘도 그분은 가장 시끄러운 악령의 자리보다 가장 말 못 하는 상처 곁에 먼저 서 계십니다. 복음은 여전히 선포되고, 치유는 여전히 일어나며, 구마는 지금도 사람을 사람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언제나 한 사람의 몸에서, 한 관계의 회복에서, 한 두려움이 물러난 자리에서 조용히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복음이 살아 숩쉬는 자리이며 마음 안에 잉태된 말씀이 관계 안에 조용히 선을 출산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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