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서 (2026,1,8. 독서와 복음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요한 1서4,19―5,4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 4,18-19)
1. 사랑의 선행성 : 하느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 1서 4,19)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하느님의 사랑을 애써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그 거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2. 사랑의 진실성 :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요한 1서 4,20-21)
요한 사도는 매우 실제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거짓말쟁이의 판별법에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이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은, 역설적으로 우리 눈앞에 있는 (때로는 사랑하기 힘든) 형제를 사랑하는 연습을 통해 증명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의 두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두 줄기입니다.
3. 믿음의 승리 : 세상을 이기는 힘 (요한 1서 5,1-4)
세상은 흔히 권력, 재물, 명예로 승리를 정의하지만, 성경은 "믿음의 승리"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 그 멍에는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은 세상의 가치관(이기심, 증오, 지배)을 거스르고 사랑으로 승리하게 합니다.
4. 해방의 기쁜 소식 : 주님의 은혜로운 해 (루카 복음서 4,18-19)
이 구절은 예수님의 공생활 사명을 요약한 '나자렛 선언'입니다. 요한 1서가 말하는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실현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은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은 죄와 죽음, 사회적 억압의 사슬을 끊어냅니다. 눈먼 이들에게 시력 회복: 영적, 육체적 어둠 속에서 진리의 빛을 보게 합니다. 은혜로운 해(희년)의 선포는 모든 부채가 탕감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하느님의 전적인 자비의 때를 알립니다.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서 (묵상)
세상은 자꾸만 보이지 않는 높은 하늘만을 우러러보라 말하지만, 당신의 계명은 낮고 낮은 땅의 흙먼지 속으로 나의 시선을 끌어내리십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그 서슬 퍼런 꾸짖음 앞에, 나는 거창한 신학의 망토를 벗고 벌거벗은 죄인이 되어 섭니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등졌던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 속에 당신이 숨어 계셨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의 얼굴이 곧 나의 성전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당신께서는 이 길 위에 당신의 사랑을 먼저 깔아두셨음을 말입니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가 숨을 쉬기도 전에 이미 '먼저' 사랑이셨고, 그 사랑은 이름 없는 들꽃의 향기로, 이름 모를 형제의 투박한 손길로 이미 내 곁에 와 계셨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기름 부어 보내신 그 현장은 화려한 제단 위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신음이 섞인 장터였고, 갇힌 이들의 차가운 창살 너머였으며, 눈먼 이들의 캄캄한 절망 한복판이었습니다. 당신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는 것은, 이제 내가 그들의 해방을 위해 나의 편안함을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서약입니다. 형제의 상처 입은 발을 씻겨주려는 믿음의 태도와 그 낮은 자세가 곧 당신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가장 고귀한 설교임을 이제야 배웁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신비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는 형제의 고통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생기는 일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칼과 방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사랑으로 되갚고 절망 속에서도 신뢰의 끈을 놓지 않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 있습니다. 나의 이기심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타인의 슬픔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그 뒷모습이 바로 세상을 이긴 승리의 자국이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길을 떠납니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기보다 부족한 채로 형제의 손을 잡으려합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을 찾으러 구름 위를 헤매지 않고, 내 앞에 서 있는 형제의 젖은 눈동자 속에서 당신의 현존을 마주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계명이라 하지만,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 때 그 계명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나를 날아오르게 하는 자유의 날개가 됩니다.
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당신의 얼굴임을, 그들과 맺는 모든 관계의 현장이 곧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찾으러 하늘을 올려다보던 제 시선을 오늘 다시 사람의 얼굴로 내려놓습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더 이상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나의 업적과 공로도, 경력도, 나의 열심도, 나의 말도 모두 침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름 부음은 제단 위의 영광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로의 배치였습니다. 가정의 반복되는 갈등 속으로, 일터의 무게와 피로 속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의 곁으로 당신은 저를 보내셨습니다. 형제의 상처 난 발을 씻기려는 그 낮은 몸짓이 이미 복음 선포임을 배웁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선택한 작음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위치였습니다. 위에 서지 않고, 중심을 차지하지 않고, 이기려 하지 않는 자리. 세속의 삶 한복판에서 관계를 살리기 위해 한 발 물러서는 그 선택이 복음의 승리임을 믿고 싶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신비를 체험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도망치지 않게 되는 일임을 오늘 다시 배웁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크고 화려한 결단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충실함,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결단, 보답 없이 계속되는 사랑임을 제 삶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이제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그 얼굴, 그 관계의 자리에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계신 당신의 현존을 알아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