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과 믿음 :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삼위일체의 친교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은 '육화하신 하느님'의 신비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공현'은 단순히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끊임없이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겸손을 마주하고 그분의 관계적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초대입니다.
1. 낮아짐으로써 드러나는 영광 : 불완전함이라는 놀이 마당
우리가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으로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과 깨어짐이라는 ‘공평한 놀이 마당’으로 내려오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겉치레나 부인도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놀이 마당'에서 우리는 비로소 평등해집니다.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워 타인 위에 서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을 구하는 '작은 자'로서 서로를 마주하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의 가난한 구유, 그 헐벗은 불완전함 속에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의 '관계적 선'을 알아보는 용기입니다.
2. 내면의 첫 번째 전쟁터 : 나환자와 늑대를 친구로 사귀기
프란치스칸 전승에서 보면 우리 모두의 안에는 '나환자'와 '늑대'가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치스러워하고 무서워하는 우리의 내적 불완전함, 정서적 상처,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은 그림자들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전쟁터는 바깥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적 생활, 정서적 생활, 그리고 기도 생활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나환자들에게 기꺼이 입 맞추지 못하고 늑대들을 길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내면에 살고 있는 그 더러운 나병과 흉포한 늑대를 환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항상 우리 안에서 용서받고 길들여지기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습니다. 내면의 어둠을 부인하는 대신 '친구'로 사귈 때, 우리는 비로소 외부의 나환자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준비가 됩니다. 공현은 내 안의 늑대가 평화의 인사를 배울 때 비로소 우리 삶의 현실이 됩니다.
3.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 : 관계라는 제대 위에서의 공현
우리가 내면의 불완전함을 수용할 때, 타인과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성체성사가 연장되는 현장이 됩니다.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가 되신 그리스도의 자취는 이제 우리 자신을 비워 내어주는 '관계적 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껴안았을 때, 그것은 자신의 혐오감을 넘어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은 이가 나누는 '축제'였습니다. 우리 일상의 만남에서 마주하는 갈등과 소외의 현장은 우리가 삼위일체의 관계적 선에 참여하는 '살아있는 제대'가 됩니다. 내가 너를 위해 나의 '옳음'을 비우고, 내 안의 늑대를 잠재우며 너의 발을 씻어줄 때,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는 우리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가장 밝게 선포됩니다.
4. 아버지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 : 완전한 기쁨으로의 초대
우리가 불완전한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완전한 기쁨'에 도달합니다. 이 기쁨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함과 거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는 '관계적 평화'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시며” 내면의 어둠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길어 올릴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겸손을 봅니다. 우리의 정직한 불완전함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빛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내 안의 늑대와 밖의 늑대가 화해하고, 나병 환자의 상처가 사랑의 입맞춤으로 치유될 때, 하느님의 통치는 '지금 여기' 우리 관계 가운데 현존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내어줌'의 관계를 맺을 때 그 뜻은 이 땅에서 완성됩니다.
결론 : 세상 속의 또 다른 공현을 향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공현은 '보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내면의 나환자와 늑대를 하느님을 만나는 성소로 삼고, 그 깨어짐을 통해 흐르는 삼위일체의 선을 관계 속에서 실현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 하느님을 우리의 불완전함 한가운데로 기쁘게 환대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상처를 친구로 삼고, 그들을 이끌고 제대 위로 나아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곧 하느님 나라의 잔치가 됩니다. "평화와 착함!" 이 인사가 우리 내면의 전쟁터를 지나 일상 속 관계마다 울려 퍼질 때, 주님의 공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