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지옥, 연옥에 대한 상태적 이해 3
프란치스칸 관점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은 '상태적 개념'을 넘어, 이를 '형제애'와 '가난(비움)'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풀어냅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은 멀리 계신 심판관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시는 분이었기에, 천국과 지옥 역시 '관계의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1. 지옥: '소유'를 통해 자기 안에 갇힌 상태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죄의 핵심은 '자기 소유화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 할 때 지옥이 시작됩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내 주장만 관철시키려 하거나, 상대방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는 태도입니다. 프란치스칸 관점에서 이는 타인을 '너'로 보지 않고 나의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며, 그 결과 스스로를 이기심의 감옥에 가두는 지옥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해 관계가 단절될 때, 프란치스칸은 이를 외부의 벌이 아니라 '사랑할 능력을 상실한 지옥'으로 인식하고 즉시 자기를 비우는 연습을 합니다.
2. 연옥: '비움'을 통한 형제애의 회복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연옥은 나를 가로막고 있는 '나라는 벽'을 허물어가는 정화의 과정입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내 안의 자존심과 분노를 깎아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프란치스칸은 이 고통을 피해야 할 벌이 아니라, '참된 형제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거룩한 용광로'로 봅니다. 싫어하는 동료나 불편한 이웃을 대할 때, 그 불편함을 '나의 편견이 타오르는 연옥의 불'로 받아들입니다. 그 불길을 통해 내 안의 편협함이 타 없어지면 비로소 그 사람이 형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3. 천국: '사소함' 속에서 발견하는 하느님과의 일치
프란치스코에게 천국은 죽어서 가는 화려한 곳이 아니라, '가장 낮고 작음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상태'입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 나에게 미소 짓는 아이, 심지어 나를 힘들게 하는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며 찬미하는 상태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는 눈이 멀고 병든 고통의 한복판에서 쓰였습니다. 조건이 갖춰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가진 상태로 살아갑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기뻐할 때, 그 자리는 즉시 천국이 됩니다.
프란치스칸 관점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지옥으로부터의 탈출, "나는 지금 이 관계에서 내 이익과 권리만을 고집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가?" 연옥의 수용, "지금 겪는 이 관계의 어려움이 나의 교만을 씻어내고 타인을 수용하게 만드는 정화의 과정임을 믿는가?" 천국의 실현,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찬미하고 있는가?"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형제를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프란치스칸에게 천국과 지옥은 '내가 타인을 형제로 대하느냐, 아니면 타자로 대하느냐'에 달려 있는 현재의 선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