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 다가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 단지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말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무엇일까요?
회개라는 단어는 방향을 바꾼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삶을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하느님을 향해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하느님께 향할 때 나타나는 모습을 가리킬 것입니다.
즉 말로만 하느님께 향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느님께 향할 때
그 열매도 자연스럽게 맺어질 것입니다.
요한이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말로만 회개하지 말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향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향한다면
우리는 그 실수를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기에
자기의 실수를 말하기보다는
남을 비난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여기에서 안타까운 것은
그러면서 점점 고집을 부리는 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그와 싸우기 싫어서
그의 말에 수긍하는 것처럼 반응하지만
자신은 자기 말이 맞기에
사람들이 자기 말에 수긍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고립되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 행동은 점점 굳어집니다.
고집부리는 것의 가장 큰 약점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거부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기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도움을 받아들이지 못해 더 어렵게 됩니다.
우리가 형편없는 사람이라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과 함께할 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면서
우리 서로가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