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와 세리가 같이 기도하러 성전에 갔다고 합니다.
같이 성전에 갔다고 하지만 바리사이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가 정말로 하느님 앞에 갔을까?
다른 하나는 기도했다고 하는데 정말 기도했을까?
제 생각에 바리사이는 혹 하느님 앞에 갔어도 자랑하기 위해 갔고,
자랑하는데 세리와 비교하며 자랑합니다.
사실 모든 자랑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고,
그러니 그는 하느님 앞에 있었지만 하느님을 뵌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본 것이고 비교 대상으로서 세리를 본 것입니다.
이는 친구에게 갔는데 자랑하러 간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자랑할 상대를 찾아서 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하필이면 하느님께 자랑합니까?
왜 하느님을 자랑 상대로 삼은 것입니까?
물론 어떤 다른 사람에게 자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만한 사람이 거지를 붙잡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거지는 아예 무시해 버리고 말지 그에겐 자랑하지 않습니다.
무시하기에 어떤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이며
말도 섞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자랑 상대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닌 자랑하러 간 거라면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진실한 대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세리가 하였습니다.
세리는 비록 하느님 앞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눈을 들어 하느님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오롯이 하느님을 만나 뵌 것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입니다.
그는 바리사이에게 곁눈질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하느님만 뵙니다.
하느님을 뵙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고,
자비를 청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리는 가난하기도 하고 겸손하기도 하며
그러했기에 세리는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겸손에 대해서 이렇게 단언합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있는 것,
이것이 겸손이며 기도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