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가 군중 속에서 행복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배었던 모태와
예수님께 젖을 먹인 가슴이 행복하다고 표현하면서
부러움을 드러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다른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표현하시면서
행복의 가능성이 보편적임을 말씀하십니다.
만약 예수님을 배었던 모태와
예수님께 젖을 먹인 가슴만 행복하다면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뿐입니다.
좀 더 생각해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숫자가 적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이 관점에서 행복한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물론 마리아의 응답이 있었지만
마리아의 응답이 있기 전에
하느님의 선택이 있었고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기준이란
하느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의 선택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데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각자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서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준을 바꾸시는 것처럼
우리도 행복의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조건에 맞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은
그 노력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꿉니다.
그리고 각자의 기준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을 말하는 기준에 조건이 많을수록
그 행복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행복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