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실천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하느님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듣기만 해도 행복하잖습니까?
사실 하느님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의 식당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십니다.
처신하시는 것을 보면 아주 자존심도 있고 지혜로우며 다정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신부라는 것을 모르십니다.
아니 제가 신부라는 것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부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도 모르시고 하느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시지요.
이 할머니가 그래서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제가 아들이나 며느리 손주 얘기를 여쭐 때 피하는 것을 보면
자손들로 인해 행복한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이럴 때
하느님이라도 아시면 얼마나 좋고 행복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행복 갈아타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행복 갈아타기’란 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행복 갈아타기’란 이제까지 이런 행복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다른 행복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행복 열차를 갈아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갈아탈 다른 행복이 천상 행복이요,
오늘 말씀으로 치면 육신의 아들을 잘 둔 어머니의 행복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은 또는 영적으로 낳은 아들을 가진 영적 어머니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영적 어머니는 하느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낳기까지 해야 하는데 말씀의 실천이 바로 낳는 것입니다.
임신뿐 아니라 출산까지 해야 완전히 어머니 되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을 실천할 때 완전한 영적 어머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아직 배 속에 있으면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출산을 해야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듯이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님도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할 때 그것으로 사람들이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고,
그런 다음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을 통해 그리스도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오늘 우리는 아주 짧은 오늘 얘기에서
‘행복 갈아타기’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받고,
하느님 말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침을 받는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