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너희'는
앞에 나오는 코라진이나 벳사이다,
또는 카파르나움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야기에 이어지는데
마지막 구절의 '너희'는 그 일흔두 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스승과 제자 관계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구절을 보면
파견이라는 관점 때문에 그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물리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분으로 이해하십니다.
그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입니다.
보낸 사람과 보내진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이유는
보내진 사람이 보낸 사람의 뜻을
대신 전하고 이루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래서 말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을 보면
내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또한 내용이 받아들이기 어려울수록
그 내용이 어렵다고 말하기보다는
전하는 사람을 탓하기 쉽습니다.
'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내가 다르게 받아들였을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내용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는 것은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내용을 처음 시작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연결됩니다.
회개를 말하는 것은 듣기 거북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바꾸라는 말은 불편하게 들립니다.
그 불편한 마음을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식으로 표현하면
결국 우리는 하느님도 거부하고
내 멋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