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끄저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오늘 또
수호천사 축일을 지내는 것은 무슨 뜻이람?
오늘 이런 말이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천사 축일을 하나만 지내면 되지 왜 대천사 축일,
수호천사 축일을 따로 너절하게 지내는 것입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의 불경스러움을 즉시 반성하면
교회 전례가 이렇게 하는 것에는 저도 모르는 큰 뜻이 있겠지,
급히 겸손 자세로 급변경하여 그 뜻이 무엇일까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묵상하니 ‘맞춤 천사’가 수호천사란 연결이 되었습니다.
수호천사란 너절하게 많은 천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나의 천사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런 말도 생각났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알맞게 잘해 주실 수 없으셔서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어머니를 주셨다는 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많아도 내게 어머니는 딱 하나이고 나의 어머니요 나만의 어머니입니다.
또 다른 생각도 났습니다.
제가 인도 가서 여러 힌두 사원을 둘러봤을 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같은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본다는 뜻이고,
천수천안(千手千眼)이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은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보고 듣고,
천 개의 손으로 보살피고 보듬는다는 곧 대자대비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수호천사도 이해하면 수호천사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다 보살피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즉시 백 마리 양과 길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양이 백 마리가 있어도 한 마리도 잃지 않으시겠답니다.
우리의 주님은 당신이 길이시고 길잡이시며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으시는 착한 목자라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 길이고 길잡이십니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 길이고 길잡이시지요.
거기로 가야 하는데 거기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양도 있고,
알지만 세상이 더 좋아 보여 세상으로 가려는 양도 있는데,
그런 양이 나를 내 개인 경호원인 수호천사를 보내 지켜주시겠다는 겁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탈출기의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런 수호천사를 내게 보내 주시겠다는데 마다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내 천사라고 하여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되겠습니까?
그끄저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천사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절이고,
수호천사란 하느님께서 내게 특사 곧 특별사절로 보내신 천사이니
이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조심하여 그 말을 들어야겠습니다.
문제는 누가 나의 수호천사입니까?
눈에 보이고 누군지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마 네가 나의 수호천사가 되고,
내가 너의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내게 충고하는 너를 나의 수호천사로,
너의 충고를 나의 수호천사가 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