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영광의 그림자
폭염 사라진 가을 아침
투명한 공기 속으로
서늘한 숨결 스며들고
풀잎 끝 이슬 맺힌
거미줄 한 올에
오롯한 우주를 보네.
정오의 태양 아래
가장 짧아지는 그림자
내 발밑에 꼭 숨어
나의 존재를 조용히 증명하네.
새벽의 동녘에서
세상을 길게 덮는 그림자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움과 함께 예고하네.
때로는 숨고 싶은
길고 짙은 내 그림자
나의 실패, 나의 아픔
모두 그 속에 있네.
그림자 없는 빛은 없고
어둠 없는 빛은 없듯이
나의 크기는
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크기.
빛과 그림자, 그 공존의 춤사위
어둠이 있어 빛은 더욱 눈부시고
빛이 있어 어둠은 깊이를 얻네.
서로를 감싸 안은 그 경계 속
오랜 진실 하나 피어나
인생의 의미를 속삭이네.
세상이 내게 던진
모든 빛을 받아들일 때
나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인생의 깊이도 함께 깊어지네.
고통은 영광의 그림자
영광의 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곳에
가장 길게 드리워진
고통의 그림자.
빛이 닿는 모든 곳에
그림자는 숨 쉬고
찬란한 왕관의 무게만큼
그 고통은 깊이를 더하네.
땀과 눈물로 새긴
수많은 흉터들,
어둠 속에서 홀로 버틴
외로운 시간들.
그 모든 고통이
결국 영광의 빛을
더욱 눈부시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배경이었음을.
고통이 없었다면
영광의 빛은
그토록 따스하지 않았으리.
우리는 그림자를 피하려 했으나
그것은 곧
빛을 버리는 일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