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루카 5,33-35)
단식은 세례로 벗겨지는 낡은 옷을 가리킨다
이 말씀에서 단식은 사도가 벗어야 한다고 가르친 낡은 옷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콜로 3,9)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 인간은 세례의 성화로 새로 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몸으로 육신의 행실을 함으로써 옛 인간의 행실과 새 인간의 행실을 섞는 일이 없도록, 이 옷에 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거듭난 ‘내적 인간!' (로마 7,22)은 얼룩덜룩한 예전의 모습 대신 그리스도와 같은 색이 되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닮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분을 위해서 세례를 받아 깨끗해진 몸이니까요.
그런즉 신랑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마음의 칙칙한 덮개를 벗어 버립시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마태 22,12 참조). 신랑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평화로운 영흔, 순수한 마음, 맑은 생각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암브로시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20
버림과 그대로 둠은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여행 중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집으로 모셔 들였다(루카 10,38).
설교 21에서 엑카르트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신적인 방법으로 태어나기를!"이라는 기도로 끝을 맺었다. 본 설교에서 엑카르트는 우리의 신적인 탄생이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다룬다. 본 설교에서 우리는 사람이 됨과 동시에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 무엇과 같은지를 살펴보았다. 사람이 됨과 동시에 하느님이 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진실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음을 믿고 우리 자신의 신성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귀한 삶이고 이것이야말로 복스러운 삶이다. 누구든지 저마다 자신에게 마음을 쓰는 만큼 이웃에게도 마음을 쓴다면, 자기가 지난 사랑이 순수하고 맑고 단순하여 선과 하느님만을 겨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고귀한
삶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삶이라면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도 손을 뻗을 것이다. 그러한 삶은 모든 장벽을 뚫고 나가서, 성도들의 사람과 신비적인 공동체를 경축할 것이다. 바로 이 성도들의 사귐과 신비적인 공동체 안에서 아름다움이 풍부하게 공유될 것이다. 이제까지 전 인류가 행했던 모든 덕이 완전히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마치 여러분이 몸소 그 모든 덕을 행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아들이 그랬듯이 사랑과 성령을 몸소 낳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녀야 할 사랑이 바로 성령이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도 낳을 것이다. 왜냐하면 엑카르트는 “하느님은 사랑이다 라고 말할 뿐 아니라 “사랑이 하느님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공평한 차원의 사량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다. 엑카르트는 수많은 영성신학자들과 달리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과 하느님을 사귀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사랑의 차이는 우리 안에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사랑이 진실로 버림과 그대로 둠의 사랑이라면 벗과 피조물을 향한 모든 사랑의 행위는 어느 정도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사랑할 마음이 일어나는 모든 순간은 성령이 일으키는 순간이다. 모든 사랑의 순간은 하느님이 불어넣은 순간이라고 엑카르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462)
----------------------------------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6. 성 프란치스코의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1“당신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주 “하느님이시나이다”(시편 76,15).
2당신은 힘세시나이다.
당신은 위대하시나이다(참조: 시편 85,10).
당신은 지극히 높으시나이다.
3당신은 전능하시나이다.
당신은 “거룩하신 아버지”(요한 17,11), 하늘과 땅의 임금님이시나이다(참조: 마태 11,25).
4당신은 삼위이고 한 분이시오며 신들의 주 하느님이시나이다(참조: 시편 135,2).
5당신은 선(善)이시고 모든 선이시며 으뜸선이시고
6살아 계시며 참되신 주 하느님이시나이다(참조: 1테살 1,9).
7당신은 지혜이시나이다.
당신은 겸손이시나이다.
당신은 인내이시나이다(참조: 시편 70,5).
8당신은 아름다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안전함이시나이다.
당신은 고요이시나이다.
9당신은 즐거움이시며 기쁨이시나이다(참조: 시편 50,10).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나이다.
당신은 정의(正義)이시며 절제이시나이다.
10당신은 우리의 흡족한 온갖 보화이시나이다.
11당신은 아름다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온화이시나이다. 12“당신은 보호자이시나이다”(시편 30,5).
당신은 수호자요 방어자이시나이다.
13당신은 힘이시나이다(참조: 시편 42,2).
당신은 피난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나이다.
14당신은 우리의 믿음이시나이다.
15당신은 우리의 모든 감미로움이시나이다.
16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나이다.
17위대하시고 감탄하올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 자비로운 구원자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