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342 추천 수 1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어제 복음의 베드로처럼 깝죽대고 앞서 나가서 걸림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길잡이는 주님이시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뒤따름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꼭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옛적 어머니들이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꼭 좋은 모습이 아니라 함은 女必從夫의 뜻도 있기 때문인데,
저는 제가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묵묵히 뒤따르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것이 젊었을 때는 멋있어 보였고
기질적으로도 그런 것이 있는데,
사실은 천박합니다.

다음은 등산을 할 때나 행진을 할 때
선두의 뒤를 따라 가는 모습입니다.
맨 앞을 가는 사람은
행로를 잡고
속도를 조절하고
떠나는 것과 쉬는 것을 정해야 하는 신경 씀, 번거로움이 있지만
뒤 따르는 사람은 그런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따라 가면 됩니다.
어떤 경우는 그저 앞 사람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그래도 뒤따름은
따름의 겸손한 정신이 없으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수난 의지가 없으면 쉽지 않습니다.
행로를 어떻게 잡어도,
속도가 따라가기 힘들어도,
쉬고 싶은데도 쉬지 않고, 떠나기 싫은데 떠날지라도
불평불만이 없을뿐더러 어째도 좋아야 합니다.

다음은 성인들이 주님을 뒤따르는 모습입니다.
이번에 프란치스코의 글을 우리말로 새로 번역하면서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해석 없이 뒤따르려했는지
새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프란치스코의 이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오늘은 성 도미니코 축일이기에 도미니코 성인의 뒤따름을 묵상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는 동시대의 인물이고
탁발 영성을 같이 열어간 선구자들이었고
수도회를 합치자는 얘기가 있었기에
프란치스코는 도미니코회의 공동의 사부이고
도미니코는 프란치스코회의 공동의 사부입니다.
두 성인이 살던 시대는 오늘 날도 그렇긴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두 가지로 폭행을 당하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의한 폭행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한 폭행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예 따르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단들처럼 자기 멋대로 주님 말씀을 해석하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이단들을 거슬러 주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던 사람들에 비해
이단들은 주님의 말씀을 글자그대로 열심히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독선적으로 따르는 것이었고
편협하게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만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른다는 독선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배제함으로 사랑의 주님 말씀을 폭행하였고,
어느 한 말씀만을 선택하고 집중함으로 보편적인 하느님의 말씀을
독점하고 왜곡하는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좁은 자기 所見에 갇힐 수 없다는 겸손과
주님의 말씀을 자기만 사랑케 할 수 없다는 사랑이
주님의 말씀을 옳게 뒤따르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임을 도미니코 성인은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6Aug

    20080817 연중 20주일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때가 언제쯤 이었습니까? 그것은 절박함과 절실로 내 몸이 달아 오를 때 였습니다. 존재의 몰입으로도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 때 우리는 현실을 압도하는 절대 힘으로 대변되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감옥에 갇혀 살기를...
    Date2008.08.16 By勳OFM Reply1 Views1269
    Read More
  2. No Image 16Aug

    연중 19주 토요일-어린이는

    하늘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는데 어린이란 어떤 존재인가? 어린이는 단순하다. 여러 가치가 충돌하지 않고 자아가 분열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힘이 없고 의존적이다.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없다...
    Date2008.08.16 By당쇠 Reply0 Views1204
    Read More
  3. No Image 15Aug

    성모 승천 대축일-아들을 낳아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성모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칭송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어찌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까? 누린 부귀영화로? 이룬 업...
    Date2008.08.15 By당쇠 Reply0 Views1331
    Read More
  4. No Image 14Aug

    연중 19주 목요일-용서, 상처의 고통에서 상처의 사랑으로

    어제는 죄지은 형제를 어떻게 교정해주어야 하는지 보았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어떻게 용서해주어야 하는지 보게 됩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이 질문에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용서...
    Date2008.08.14 By당쇠 Reply1 Views1336
    Read More
  5. No Image 13Aug

    연중 19주 수요일-교정의 단계들

    잘못한 사람에게 가장 잘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무관심하여 아무 말 하지 않는 것, 알면서도 안 좋은 감정 관계에 휘말리기 싫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임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 다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잘못이 잘못한 것을 뒤에서 ...
    Date2008.08.13 By당쇠 Reply1 Views1235
    Read More
  6. No Image 13Aug

    연중 제 19주일-관상의 힘

    엘리야는 오늘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밤을 지냅니다. 하느님의 산 호렙에 오르기 전 엘리야는 다른 산 갈멜 산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세벨의 수많은 거짓 예언자과 대결을 하였습니다. 우리 흔히 하는 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眞劍勝負를 한 것입...
    Date2008.08.13 By당쇠 Reply3 Views1415
    Read More
  7. No Image 13Aug

    연중 19주 금요일-앞서지 않는 뒤따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어제 복음의 베드로처럼 깝죽대고 앞서 나가서 걸림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길잡이는 주님이시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뒤따름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 모습이 떠오릅...
    Date2008.08.13 By당쇠 Reply0 Views134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230 1231 1232 1233 1234 1235 1236 1237 1238 1239 ... 1301 Next ›
/ 13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