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8.02.11 07:02

연중 제6주일

조회 수 578 추천 수 1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치유를 청하는 나병 환자의 말을

 예수님께서는 들어 주십니다.

 나병은 그 당시만 해도

 치유할 수 없는 병이었으며,

 더욱이 전염이 잘 되는 병이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격리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환자 본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치유해 주셨다는 것은,

 단순히 병의 치유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가 다시 공동체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그는 그에게 병을 선언한 사제에게서

 치유되었다는 선언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사제에게 이야기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치유받은 사람이 사제에게 갔다고

 복음은 전하지 않고,

 떠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도 율법에 대한 규정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치유되었다는 기쁨이 너무나 큰 나머지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이 모습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모습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규정을 지키라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치유되었다는 선언을 듣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에 앞서 치유해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도 담고 있습니다.

 즉 병의 치유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의 기적일 뿐,

 하느님을 다시 만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적으로만 보는 많은 사람들도

 그 기적의 힘을 얻고자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사실 치유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가 그 치유를 기적으로만 받아들였는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치유를 기적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그 안에 있지 않다면,

 기도해도 치유 받지 못한 경우에는,

 자칫 그것이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누구는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고 회복되는데,

 누구는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고 느껴지면,

 '내가 하느님께 무슨 큰 죄를 지었나?

 그래서 벌을 받아서 나는 치유해 주시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면,

 나병 환자는 병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겠지만,

 물론 그래서 하느님의 성막으로 다가갈 수는 없지만,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그가 머물로 있는 진영 밖에서

 그와 함께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오늘 복음에도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나병 환자를 물리치지 않으시며,

 나병 환자가 다가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진영 밖으로,

 도성 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함께 해 주시며,

 그 함께 하심 때문에

 그는 다시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병의 치유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는가입니다.

 병에서 온전히 치유되지 않을지라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머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것,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병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하느님과 함께 함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병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1Feb

    연중 제6주일

     치유를 청하는 나병 환자의 말을  예수님께서는 들어 주십니다.  나병은 그 당시만 해도  치유할 수 없는 병이었으며,  더욱이 전염이 잘 되는 병이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격리...
    Date2018.02.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78
    Read More
  2. No Image 11Feb

    연중 제 6 주일-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병환자에 대한 얘기이고 그래서 오늘은 병자의 날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나병환자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가 아주 큽니다. 나병환자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가히 혁명적이고 구약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정반대입니다.   ...
    Date2018.02.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11
    Read More
  3. No Image 11Feb

    2018년 2월 11일 연중 6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8년 2월 11일 연중 6주일   오늘 복음은 주님의 자비로운 마음과 깨끗함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만나 치유의 기적이 일어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에 따르면 나병은 전염되는 부정이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유 되어 정화 예식을 ...
    Date2018.02.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630
    Read More
  4. No Image 10Feb

    연중 5주 토요일-은총체험의 확장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오래 전에 빵의 기적 얘기를 읽을 때 주님은 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
    Date2018.02.1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56
    Read More
  5. No Image 09Feb

    연중 5주 금요일-총동원하시는 주님 사랑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을 보면...
    Date2018.02.0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47
    Read More
  6. No Image 08Feb

    연중 5주 목요일-부스러기 인생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제가 강론을 쓸 때 대략 두 가지 방식으로 씁니다. 전체적인 대의를 생각하며 강론을 쓰거나 읽다가 어느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것을 중심으로 쓰곤 합니다....
    Date2018.02.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29
    Read More
  7. No Image 07Feb

    연중 5주 수요일-우리 마음에 들이지 말아야 할 것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인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문제를 다룹니다.   정결이 얼마나 중요했느냐 하면 사두가이, 바리사이파처럼 정결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에세네파’가 있었고 세례자 요한의 세례도 이 에세네파...
    Date2018.02.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62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97 698 699 700 701 702 703 704 705 706 ... 1298 Next ›
/ 129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